달
ㄱ
가을 달밤 ㅡ 삼의당 김씨
가을이 되면 ㅡ 김영남
거미와 달 ㅡ 권혁수
검은 달 , 흰달 ㅡ 조용미
계단에 웅크린 여인 ㅡ 김충규
귀 ㅡ 서정춘
그림자가 하늘의 달을 움직인다ㅡ 조영서
ㄴ
낮달 ㅡ 문신. 문인수. 유치환. 정완영
낮달의 비유 ㅡ 문태준
내 늑골 아래 달이 뜬다 ㅡ 장석주
ㄷ
달 ㅡ 김동명. 김영랑.김준태. 박목월. 백승창. 송익필.이승희. 정지용.천상병
달같이 ㅡ 윤동주
달과 되새 떼 ㅡ 박남준
달님 ㅡ 권정생
달님은 북풍의 과자 ㅡ 베이첼 린드세이
달 따러 가는 저녁 ㅡ 성선경
달맞이 ㅡ 김소월
달밤 ㅡ 김수영. 석함가.아이헨도르프. 옹조.이상화. 이호우. 조지훈.허형만. 황동규
달밤에 임 그리워 ㅡ 장구령
달빛 ㅡ 신경림.조흔파
달빛 가난 ㅡ 김재진
달빛기도ㅡ 이해인
달빛 동화 ㅡ 문인수
달빛 어린 산간 계곡 ㅡ 원중도
달빛을 밟으며ㅡ 송찬호
달빛을 쓸어내려다가 ㅡ 황경인
달아 ㅡ 이상화
달에게 ㅡ 문인수
달 움직이는 별 ㅡ 박후기
달은 어둠 속에 집을 짓는다 ㅡ 임영석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ㅡ 송찬호
달을 보며 ㅡ 민영. 한용운
달의 뒤편 ㅡ 장옥관
달의 자유로움 ㅡ 프로스트
달이 나를 기다린다 ㅡ 남진우
달이 떴네 ㅡ 시경
달이 자꾸 따라와요 ㅡ 이상국
달밤에 아우 그리워 ㅡ 두보
달 봐라 ㅡ 문인수
달빛 가난 ㅡ 김재진
달빛 기도 ㅡ 이해인
달빛 동화 ㅡ 문인수
달타령 ㅡ 민요
달. 포도. 잎사귀ㅡ 장만영
ㅁ
만월 ㅡ 김명수. 이원규. 함동선
ㅂ
바보 달 ㅡ 유승도
반달 ㅡ 김소월 .김준태. 윤석중.이량연.이정록.황진이.
방아찧는 여인 ㅡ 유영길
보름달 ㅡ 나호열. 노창선.정대호
ㅅ
산에서 보는 달 ㅡ 왕양명
산중에서 후학들에게 ㅡ 왕수인
서재에서 바라보는 달 ㅡ 양만리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ㅡ 문인수
새벽달 ㅡ 김용화
소영위제 ㅡ 이상
슬픈 달밤 ㅡ 하기와라 사쿠타로
ㅇ
아름다운 밤의 여왕 ㅡ워즈워드
아미산월가 ㅡ 이백
여름에는 저녁을 ㅡ 오규원
여름의 달밤 ㅡ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ㅡ 김소월
옥문관의 밝은 달 ㅡ 이백
우물 속의 달 ㅡ 이규보
움직이는 달 ㅡ 민구
월색 ㅡ 김소월
월식 ㅡ 안도현
월하독작 ㅡ 이백
월훈 ㅡ 박용래
ㅈ
조각달 ㅡ 문정희
쪽배로 큰 바다 건너서 ㅡ 나흥유
종이 바른 창 ㅡ 곽진
ㅊ
초승달 ㅡ 곽말약. 서재환 .함민복.황정자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을 빚을 때 ㅡ서정주
ㅍ
피타고라스의 달 ㅡ 정진여
ㅎ
해와 달 ㅡ 시경
화남 풍경 ㅡ 박판식
황홀한 달빛 ㅡ 김영랑
흰달 ㅡ 베들렌느
가을 달밤 삼의당 김씨(조선)
달 하나가 두 곳을 비추는데
두 사람은 천 리를 떨어져 있네
나도야 저 달 그림자 따라
밤마다 임의 곁을 비추었으면
가을이 되면 김영남
달, 저 달을
싸리울에 묶어본다
허름한 말뚝에 매어본다
그러면 달은 짖는다
짖어 푸른 밤이 된다
나는 푸른 밤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가 묶어둔 달을 풀어준다
달은
깻단 이고 오는 어머니를 따라 온다
살랑살랑 꼬리 치며 삽살개도 따라온다
이번에 달 대신 개를 묶어본다
달은 어느새 동산 위로 올라가고
개는 기둥 주위를 맴돌며 밥그릇의 달빛을 핥는다
마치 동료처럼
그러면 지붕 위에는 외삼촌 닮은 얼굴 하나
백자 항아리 술병을 허리에 차고 웃어오고
어디에선가는 위험 신호의 호루라기 소리들
이내 나는 허우적거릴 것 같아
허우적거리다가 지붕과 함께 잠겨버릴 것 같아
익사 직전의 구조 요청을 누군가에게 하게 되고
달, 저 달은 날 가둔다. 바다 한가운데 가두고
고백하라, 반성하라 고문을 해온다
거미와 달 권혁수
거미가 마른 나뭇가지에 줄 몇 가닥 드리우고 미니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는군요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인데
하루 종일 배경화면으로 푸른 하늘을 깔고 구름과 시원한 비바람을
실시간으로 서비스해도 파리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질 않는다네요
아무래도 별이나 물소리라도 메뉴판에 더 얹어놔야 할까봅니다
목이 길어 목마른 밤
달덩이 하나 덜렁 거미줄에 걸리자
거미 녀석, 졸다말고 덥석 마른 이빨로 꽉 깨물었네요, 정신없이
엄마 젖 빨듯 빨았대네요
저런, 하루하루 쭈그러드는 달이 안쓰럽군요
검은 달, 흰달 조용미
섬의 동쪽과 서쪽은 죽음과 삶만큼 닮아 있고
또 빛과어둠처럼 달랐다
동쪽에서는 검은달이, 서쪽에서는 흰 달이 떠올라
두 개의 달이 머리 위를 지나기도 했다
섬에서 모든 빛은 다 하늘 색 페인트칠을 한
그 창을 통해 모여들었다
그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바다를 거쳐온 혼돈과 푸른빛을
모두 다 꺼내어 만져보면
손바닥에서 바람소리가 나기도 했다
흰 달이 검은 달이 되고
검은 달이 흰 달로 변해
바다 쪽으로 오래 끌려나가느 날이 있었다
나는 이 지상의
어느 먼 별에 와 있는 것일까
웅크린 여인 김충규
캄캄한 빗속에서 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빗물이 줄줄 새는 계단에 여인이 웅크려 있었다
탯줄이 붙은 어린 달이 여인의 몸에서 떨어졌다
계단 밖의 나무 떼가 하나같이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단 밑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여인은 보이지 않는 걸까
달에서 내려온 듯 환한 여자인데 왜 못 보는 걸까
빗소리가 적막한 골짜기를 무수히 만들고 달의 울음소리가 더 처연해졌다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그 무엇이든 제 속에 우물을 갖고 있는 법
달의 우물은 얼마나 아득한 깊이일까
달의 살 냄새가 빗물에 풀리고 풀려 밤의 고요가 환해질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계단에 웅크린 여인의 몸은 젖어있지 않았다
지상의 사람이 아닌지 빗물이 전혀 닿지 않았다
그 누구도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았다
달의 세계로 오르는 계단인 듯
비 그치면 여인은 몸을 일으켜 저벅저벅
그 계단을 통해 달의 세계로 올라가려는 걸까
계단 밖의 나무 떼가 달을 숭배하는 어떤 집단의 사제들처럼
빗줄기의 아우성에도 조금의 자세도 흐트리지 않았다
귀 서정춘
하늘은 가끔씩 신의 음성에겐 듯
하얗게 귀를 기울이는
낮달을 두시었다
그림자가 하늘이 달을 움직인다 조영서
달도 신호등에 걸린다
GO
STOP
하늘이 따라오다가 뒤를 머무적거린다
별들은 저마다의 길을 반짝인다
바람이 건너오다가 몸을 살짝 감춘다
발자국이 밀려오고
발자국이 밀려가고
달도 골목을 접는다
그믐달 문인수
저 누군가의 뼈
어두워 질수록 그대
아픔
그대만이 잘 보이는
중천의 그믐달
낮달 문신(1973 - )
銀河의 줄기 따라
직녀의 마음 한 조각 떠 간다
꽃댕기 같은 ...
첫새벽 은핫물에 머리 감다가 떠내려 보낸
그리움 한 조각
낮달 문인수
왜 그리
내 저무는 때에만 오시는지
또 비켜 나시는지요
어머니, 당신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저
바람 찬 가지 끝 먼 산마루 여러 길 위에
근심의 힘으로 뜬
흰 낯빛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자꾸 멀리 잊습니다
낮달 유치환
쉬이 잊으리라
그러나 잊히지 않으리라
가다 오다 돌아보는 어깨 너머로
그날밤 보다 남은 연정의 조각
지워도 지지 않는 마음의 어룽
<청령일기>
낮달 정완영
엄마가 밭 매러 가고 내가 집을 보는 날엔
우리 집 우물 속에 낮달 하나 숨어 살았네
아무도 모르는 속내를 나랑 둘이 숨어 살았네
학교 갔다 돌아온 날 어머니가 안 보이면
우물 속 들여다보며 엄마! 하고 불러 보았네
그러면 낮달이 찰랑, 원냐! 하고 대답했었네
낮달의 비유 문태준
내 목숨이 서서히 무너지고 싶은 곳
멀리서 온 물컹물컹한 소포
엷은 창호문과 성글은 울
찬물 한 그릇이 있는 마루
꽃도 새도 사람도
물보다 물컹하게 쥐었다 놓는
식었던 아궁이가 잠깐만 환한
내 귓속에 맑게 흐르는 이별의 말
자루에서 겨처럼 쏟아져 내리다 흰빛이 된 말
내 늑골 아래 달이 뜬다 장석주
사람들이 떠나갔다
늑골 아래가 시리다
나 한 번도 옆구리에 날개가 매달린 적 없었으니
요란스럽게 푸드덕댄 적도 없아
다만 늑골께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니
거기 떠올라 있는
얼음처럼 차고 흰 달이 만져진다
밀레 ㅡ 달밤의 목장
달 김동명
달은 황혼과 함께
언제까지나 믿어도 좋을 나의 친구다
이들밖에 실로 내 집을 찾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달은 저의 가난한 친구를 위하여
백금의 모전毛氈을 가져다가
나의 뜰에 깔아준다
나는 제왕 같이 그 위를 거닐며
나의 성대한 아침을 꿈꾼다
루오
달 김영랑
사개 틀린 고풍의 툇마루에 없는 듯이 앉어
아직 떠오를 기척도 없는 달을 기둘린다
아무런 뜻 없이
아무런 뜻 없이
이제 저 감나무 그림자가
사뿐 한 치씩 옮아오고
이 마루에 빛깔의 방석이
보시시 깔리우면
나는 내 하나인 외론 벗
가냘픈 내 그림자와
말없이 몸짓없이 서로 맞대고 있으려니
이 밤 읊기는 발짓이나 들려 오리라
달 김준태
달나라에는 죽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은 밝습니다
달 박목월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산도화> 1955년
세번째 넘어지심
달 백승창 白承昌(조선)
자다 일어나 들창문 열어보니
겨울이 아닌데 뜰에 온통 눈
아이 불러 급히 마당 쓸라 하니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의 달 가리키네
달 송익필(조선)
보름달 되기까진 하 더디기도 하더니
보름달 되고 나선 어찌 그리 쉬이도 이지러지는가
서른 날 밤 가운데 둥글기는 단 하루
우리 인생 백 년도 이와 같은 것
달 이승희
달이 뜨면
나무들의 속 살림살이가 환하게 다 보여
간장 종지 같은 밥그릇들과
낡은 신발 몇켤레
아린 속 씨앗처럼 단단한 속잎들의 몸
그 몸에서 자라나는 어금니 같은 세월
둥글게 감아올린 달의 역사
환하다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창비. 2006년
달 정지용
선뜻 ! 뜨인 눈에 하나차는 영창
달이 이제 밀물처럼 밀려 오다
미욱한 잠과 벼개를 벗어나
부르는 이 없이 불려 나가다
한밤에 홀로 보는 나의 마당은
호수같이 둥그시 차고 넘치노나
쪼그리고 앉은 한옆에 힌돌도
이마가 유달리 함초롬 곻아라
연연턴 綠陰 , 水墨色으로 짙은데
한창때 곤한 잠인양 숨소리 설키도다
비듥이는 무엇이 궁거워 구구 우느뇨
오동나무 꽃이야 못견디게 향그럽다
<신생>.42호. 1932년 6월
달 천상병
달을 쳐다보며 은은한 마음
밤 열시경인데 뜰에 나와
만사를 잊고 달빛에 젖다
우주의 신비가 보일듯 말듯
저 달에 인류의 족적이 있고
우리와 그만큼 가까워진 곳
어릴 때는 멀고 먼 것
요새는 만월이며 더 아름다운 것
구름이 스치듯 걸려 있네
마카오
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달은 응접실의 시계와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정원 담벼락 위에 있는 도둑놈들을 비춰 주기도 하고
길거리와 들판과 항구의 부두를 비춰 주기도 하며
나뭇가지 위에서 잠자는 작은 새들을 비춰 주기도 하지
날카롭게 울어대는 고양이와 찍찍거리는 생쥐도
집 문가에서 울부짖는 강아지도
한낮에는 보금자리에서 쉬고 있던 박쥐도
모두 달빛에 나와 있기를 좋아하지
그렇지만 낮에 속해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달이 가는 갈을 막지 않도록 웅크린 채 잠자지
그리고 꽃들과 어린이들은 눈을 감고 있지
아침이 되어 해가 다시 떠오를 때까지
달같이 윤종주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나간다
달과 되새 떼 박남준
지리산 쌍계산 골짜기
10년만에 돌아왔다고 사람들의 얼굴에 희색이 돈다
되새 떼가 몰려왔다 수천수만 마리가
몰려가고 오므렸다 폈다
솟구치고 내리꽂히는데
그 사이 저녁감을 찾아나선 매 한 마리 빙빙
휘오 휘오 맴을 돌며 입맛을 다신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는데
어쩐다지 이를 어째 구경나온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뒷동산에 이윽고 서슬 푸른 초승달 스르릉
오르락내리락 안절부절 되새 떼들이
일제히 달 속으로 들어간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와르르르
한순간 대숲으로 쏟아져 이내 잠잠하다
뭐라고 그랬을까
그러니까 이를테면 무슨 부탁을 하기는 한 모양인데
되새 떼가 잠든 늦겨울의 저녁하늘
달은 한껏 실눈을 치떠서 사위를 살피고
매 한 마리 점점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아하 그러니까 그게
달님 권정생
새앙쥐야
새앙쥐야
쬐금만 먹고
쬐금만 더 먹고
들어가 자거라
새앙쥐는
살핏살핏 보다가
정말 쬐금만 먹고
쬐금만 더 먹고
마루 밑으로 들어갔어요
아픈 엄마개가
먹다 남긴 밥그릇을
달님이 지켜주고 있지요
달님 리처드 몽크턴 밀른스, 하우턴 경(1809-1885)영국
달님, 달님, 달님은 어디를 헤매고 계셔요?
바다 위를 헤맨단다
달님, 달님, 달님은 누구를 사랑하셔요?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를 사랑한단다
달님은 지구를 돌기가 힘들지도 않나요, 한 번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요?
달님은 왜 그렇게 창백하고 슬프게 보이나요, 항상 울고 싶다는 듯이?
그건 묻지 말아라, 귀여운 아이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너의 상상력은 너무도 풍부하구나
나는 위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의 말에 복종해야 한단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지
달님, 달님, 달님은 어디를 헤매고 계셔요?
바다 위를 헤맨단다
달님, 달님, 달님은 누구를 사랑하셔요?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를 사랑한단다
달님은 북풍의 과자 베이첼 린드세이(1879-1931) 미국
달님은 북풍의 과자이지요
북풍이 달님을 매일매일 깨물어 먹어요
가장자리만 조금 남을 때까지요
그러다가 그것마저 슬그머니 없어지고 말지요
남풍은 과자를 굽는 사람이지요
그는 자신의 주방에서 구름을 반죽해서
바삭바삭한 새 달님을 구워내지요, 그걸 ...탐욕스런
북 ...풍은 ...다시금 ...먹어치우는 것이에요!
달 따러 가는 저녁 성선경
어머니는 웃음 한번으로 어떻게
수천 두락의 논뙈기를 만들 수 있는지요
삿갓배미, 치마배미, 짚신배미
조각보처럼 박음질한
다랭이논 쫄래쫄래 따라오고요
하늘을 오르는 계단이
저렇게 주름졌나요
일렁거리는 벼 이삭들도
수수수수수
손주처럼 간지럼을 탑니다
굴참나무는 굴참나무끼리
너도밤나무는 너도밤나무끼리
제 그림자에 넋을 놓고 자빠졌을 때
개 꼬랑지에 휘휘 감기는 저 구름들
무슨 생각 저렇게 물들였나요
어머니 땀 좀 닦으셔요
수건을 건네자 일렁이는 하늘
세상이 참 환해집니다
김홍도 ㅡ 소림명월도
달맞이 김소월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새라 새 옷은 갈아입고도
가슴엔 묵은 설움 그대로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달마중 가자고, 이웃집들!
산 위에 수면에 달 솟을 때
돌아들 가자고, 이웃집들!
모작별 삼성이 떨어질 때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다니던 옛동무 무덤가에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달밤 김수영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달 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보다
나는 커단 서른 아홉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 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달밤 석함가(청나라)
꿈속에 휘영청 밝은 달빛
휑뎅그렁 만 리 드넓은 땅 위에 하이얗네
놀라 일어나 옷 걸치고 나서니
이곳이 그대로 고향산천이로세
달밤 아이헨도르프
하늘이 조용히
대지와 입 맞추니
피어나는 꽃잎 속에 대지가
이제 하늘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바람은 들판을 가로질러 불고
이삭들은 부드럽게 물결치고
숲은 나직하게 출렁거리고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곧이어 나의 영혼은
넓게 날개를 펼치고
집으로 날아가듯
조용한 시골 들녘으로 날아갔다
달밤 옹조(청나라)
달 밝은 밤 조용히 앉아
홀로 읊조리는 소리에 서늘함이 출렁이네
개울 건너 늙은 학이 찾아와
매화꽃 그늘을 밟아 부수네
달밤 ㅡ都會 이상화
먼지 투성인 지붕 위로
달이 머리를 쳐들고 서네
떡잎이 짙어진 거리의 포플라가 실바람에 불려
사람에게 놀란 도적이 손에 쥔 돈을 놓아 버리듯
하늘을 우러러 銀쪽을 던지며 떨고 있다
풋송에나 비길 얇은 구름이
달에게로 달에게로 날아만 들어
바다 위에 섰는 듯 보는 눈이 어지럽다
사람은 온 몸에 달빛을 입은 줄도 모르는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예사롭게 지껄인다
아니다 웃을 때는 그들의 입에 달빛이 있다 달 이야긴가 보다
아, 하다못해 오늘 밤만 등불을 꺼 버리자
촌각시같이 방구석에서 추녀 밑에서
달을 보고 얼굴을 붉힌 등불을 보려무나
거리 뒷간 유리창에도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달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달밤 조지훈
달밤 허형만
달밤 황동규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다면
내 보여 주리라
저 얼은 들판 위에 내리는 달빛을
얼은 들판을 걸어가는 한 그림자를
지금까지 내 생각해온 것은 모두 무엇인가
친구 몇몇 친구 몇몇 그들에게는
이제 내 것 가운데 그 중 외로움이 아닌 길을
보여 주게 되리
오랫동안 네 여며 온 고의춤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두 팔 들고 얼음을 밟으며
갑자기 구름 개인 들판을 걸어갈 때
헐벗은 옷 가득히 받는 달빛 달빛
달밤에 아우 그리워 두보 杜甫(당나라)
수루의 북소리에 사람 왕래 끊겼는데
변방의 가을 끼룩 외마디 기러기 울어 예네
이슬은 이 밤부터 하얗게 맺히는데
달은 고향에서처럼 밝기만 하구나
아우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죽었는지 살았는지 물어 볼 곳조차 없네
글을 써서 보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어찌할꼬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달밤에 임 그리워 장구령(당나라)
바다 위에 밝은 달 뜨면
온 세상 사람들 다 그 달을 보는데
사랑하는 사람 이 밤 멀리 있음이 원망스러워
밤새도록 잠 못 들고 그리움에 서성이네
촛불 끄고 눈부시게 쏟아지는 달빛 바라다가
옷 걸치고 나서니 촉촉이 이슬이 내리네
손으로 한 옴큼 떠다드릴 수 없으니
다시 잠자리에 들어 임 만나는 꿈이나 꾸려네
달빛 신경림
밤 늦도록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한다
산골 여인숙은 돌광산이 가까운데
마당에는 대낮처럼 달빛이 환해
달빛에도 부끄러워 얼굴들을 돌리고
밤 깊도록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한다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따지지 않는다
산비탈엔 달빛 아래 산국화가 하얗고
비겁하게 사느라고 야윈 어깨로
밤 새도록 우리는 빈 얘기만 한다
달빛 조흔파
유리창에 부서지는 달빛이 하도 고와
한자락 끊어내어 그대에게 보내오니
내게로 오시는 길 어둡거든 밝히시고
임이여 나 본 듯이 친구삼아 오소서
나뭇잎이 반짝이는 달빛이 너무 고와
한조각 오려내어 그대에게 보내오니
서둘러 오시는 길 아득히 멀거들랑
임이여 바람결에 소식 먼저 보내소서
달빛 가난 김재진
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홍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 잠도 안 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 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 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달빛 기도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달빛 동화 문인수
달빛 어린 산간 계곡 원중도(명나라)
산이 환해지니 새가 놀라 울고
바위 차가워 서리가 맺히네
흐르는 물 그 위로 달빛 쏟아져
계곡에 온통 눈이 내린 듯
달빛을 밟으며 송찬호
어두운 밤 아이가 잠을 깨어 운다 그 때다
구름 뒤에서 달이 불쑥 고개를 내밀 듯
엄마의 옷깃을 헤치고 출렁 솟아오르는
뭉실한 젖통 아이가 달빛을 빤다
달빛이 온 세상에 환히 퍼져 흐른다
어두운 밤길을 가던 사내가
갑작스런 달빛에 찔려 비틀거린다
달빛, 달빛, 칼빛
아버지가 떠나던 날부터 어머니는
은은한 달빛이었습니다
어느 달 밝은 밤 그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아, 그곳에도 아버지를 바라고
달이 하나 떠 있었습니다
차마 그를 찌르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밤길을 걷는다 옆구리에서 새어나오는
달빛을 움켜쥐고
휘청거리며 걸어간 그 옛길을
달빛이 무디어질 때까지 달빛을 밟으며
오늘 밤엔 내가 그 길을 간다
달아 이상화
달아!
하늘 가득히 서러운 안개 속에
꿈모닥이 같이 떠도는 달아
나는 혼자
고요한 오늘 밤을 들창에 기대어
처음으로 안 잊히는 그이만 생각는다
달아!
너의 얼굴이 그이와 같네
언제 보아도 웃던 그이와 같네
착해도 보이는 달아
잘도 자는 풀과 나무가 예사롭지 않네
달아!
나도 나도
문틈으로 너를 보고
그이 가깝게 있는 듯이
야릇한 이 마음 안은 이대로
다른 꿈은 꾸지도 말고 단잠에 들고 싶다
달아!
너는 나를 보네
밤마다 손치는 그이 눈으로 ㅡ
달아 달아
즐거운 이 가슴이 아프기 전에
잠 재워 다오 ㅡ 내가 내가 자야겠네
달에게 문인수
내가, 어이 촌놈! 하니까
저도, 어이 촌놈! 한다
달 움직이는 별 박후기
이삿짐을 꾸린다
좀 더 넓은 집을 원했으므로
나는 차갑고 어두운
우주 저편의 저밀도지대를 향해
짐 실은 트럭을 몰고 간다
도시가 팽창을 멈추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불러오는 풍선의 표면에 들러붙은 티끌처럼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변두리의 버스 종점이 저 경계를 넘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듯
젖은 눈망울 반짝이는 어린 것들을 이끌고
더욱 깊숙한 어둠 속으로
나는 달려간다
뒤돌아보면, 불꺼진 내가 살던 집
눈감은 창문이여 안녕
이제 나는
처절한 밤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잠든 내 몸을 깨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호롱을 떠난 불빛과 같고
다만, 검은 그을음 같은 구름만이
뒤돌아보는 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가린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멀어져가는 별들의 뒷모습처럼
보일 듯 말 듯 위태롭게 빛날지라도
달은 어둠 속에 집을 짓는다 임영석
까치가 은행나무 가지 사이를 파고 집을 짓는다
그 사이 달빛도 어둠을 파서 집을 짓는다
처음에는 손톱 같더니 그 손톱 같은 사랑을 키우더니
치악산 소나무 위에 걸어 놓는다
나, 하루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바라보면
둥근 달, 치악산 솔바람 소리를 껴안고
일년 열 두달 허물고 짓고 허물고 짓다가
행구동 저수지 물 속에 앉아 참선을 한다
저수지 물고기 함께 참선을 하다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물 밖으로 튀어 오르며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 속에서도 달은 너울너울 춤을 춘다
치악산 그림자 저수지 물 속에 들어와 더위를 식히며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을 내려다 본다
몇 년을 내려다 보았는지 치악산 눈빛은 능선 따라서 길이 나고
머리결 같은 앉은뱅이 나무 구름 한 점 잡아 두지 못하고
바위 곁에 앉아 어둠 속에 집을 짓는 달만 바라본다
아, 나는 바라만 봐도 현기증 난다
저수지 물 속 치악산은 꺼꾸로 매달려 나무를 키우고
달은 그 치악산 머리결 같은 나무에 달빛을 엮어 집을 짓는다
어둠이 깊은 만큼 단단해 보이는 치악산 솔바람 소리
울타리도 없는 달의 집을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다녀간다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송찬호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레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달을 보며 민영
밤하늘의 달을 보며
아, 달이 밝구나!
읊조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내 생애의 바람 세었던 날들이
저 달 속에
검푸른 산맥처럼 누워 있고
지금도 살아 있는 기파랑의 달이
잣나무 가지 위에 걸려 있다
강물같이 쏟아지는 달빛으로
온몸을 적시면서
이제껏 남은 회귀의 날을 기다린다
아, 정말
달이 맑고도 시원하구나
달을 보며 한용운
달을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었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을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얼굴이 됩니다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그믐달이 된 줄을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달의 뒤편 장옥관
등 긁을 때 아무리 용써도 손닿지 않는 곳이 있다
경상도 사람인 내가 읽을 수는 있어도 발음할 수 없는 시니피앙 '어'와 '으'
달의 뒤편이다
천수관음처럼 손바닥에 눈알 붙이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내 얼굴, 달의 뒤편이다
물고문 전기고문 꼬챙이에 꿰어 돌려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
더듬이 떼고 날개 떼어 구어 먹을 수는 있어도
빼앗을 수 없는 귀뚜라미 울음 같은 것, 내 눈동자의 뒤편이다
달의 이면 장석주
천지사방 고요하고 쓸쓸하다
내 슬픔에
웬 느닷없는 청산가리냐
아름드리 은행나무 황금빛 잎만 자꾸 떨구고
거기 아무도 없는가
세상에 날벼락 같은 이 적막감
왕릉을 돌아나오면
짙은 안개 속을 지나가는 차들은 엉금엉금 기며
낮게 낮게 기침을 토하고 있다
고통으로 가는 길 끝엔
언제나 독처럼 달디단 잠
잠 깨면 이 가을 청산가리 슬픔 속에서
미칠 일 하나 뿐이다
아주 미쳐버리면
저 혹성으로 가자
그러나 혹성에도 종말은 있으리라
우리 새끼는 낳지를 말자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계사. 1998년
달의 자유로움 프로스트
나무와 함게 어우러진 농촌 동네 하늘 위에
당신의 머리에 보석을 달 듯
초승달을 비스듬히 달아 보았소
빛나는 부분이 좁기는 하여도, 그것으로
아름다웠고, 일등성 못지않게
꾸며졌습니다
빛나는 달을 두고 싶은 곳 어디에나 두었습니다
어느 날 밤 천천히 걸으며
등나무 광주리에서 달을 꺼내어
잔잔한 수면 위에 던졌었습니다
그러자 너울대는 물결이며 번져가는 색조가
가지각색으로 변하는 것이었어요
달이 나를 기다린다 남진우
어느 날 나는
달이 밤하늘에 뚫린 작은 벌레구멍이라고 생각했다
그 구멍으로
몸 잃은 영혼들이 빛을 보고 몰려드는 날벌레처럼 날아가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달이 둥그러지는 동안
영혼은 쉽게 지상을 떠나지만
보름에서 그믐까지 벌레구멍은
점차 닫혀진다 비좁은 그 틈을 지나
광막한 저 세상으로 날아간 영혼은
무엇을 보게 될까
깊은 밤 귀 기울이면
사각사각
달벌레들이 밤하늘의 구멍을 갉아 먹는 소리가 들린다
달이 떴네 時經
ㅡ 달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노래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고운 임의 모습 떠오르네
아리따운 그 모습이여, 마음이 시름으로 아프네
달이 떠 희게 비치니 아름다운 임의 얼굴 떠오르네
얌전한 그 얼굴이여, 마음이 시름으로 아프네
달이 떠 환하게 비치니 어여쁜 임의 몸매 떠오르네
맵시 고운 그 몸매여, 마음이 시름으로 달아오르네
달이 자꾸 따라와요 이상국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파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 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 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달 봐라 문인수
동대구역 역사 옆구리를 미는 달 봐라
붉은 반달이다
육중한 뱃전이다
서울 방면으로
부산 방면으로 가던 볼일들을 지긋이 누르는
달의 정박은 압도적이다
일단 한 번씩 쳐다보게 되는 달
쳐다보면서
풀무치 소리를 타고 올라가는지
박넝쿨을 타고 올라가는지
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올라탄다
오지랖 넓은 달
그러나 옛날부터
그대 탄식만을 실어 만선인 달 봐라
달빛 동화 문인수
달은 언제나 우리들보다 몇 살 더 많았다
달이 앞장 서 갔다
아이들 여럿이 하고 함께 갔다
별을 헤면서 갔다
얼마나 많이들 헤아려 담았을까
긴 둑길을 너무 멀리 올라가 있었고
불현듯 무서웠다
누가, 귀신 온다! 소리치며 뛰었다 다들 뛰었다
먼 길갯마을 개 짖는 소리들이 뒤꿈치를 물 듯 물 듯 따라왔다
문을 쾅 닫고 문구멍으로 내다봤다
벌쯤 열린 삽짝 밖으로 빙긋이
달이 나가고 있었다
달에게 주먹감자를 먹이고 싶었지만 못했다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학의 전당. 2006년
달빛을 쓸어내려다가 황경인 (청나라)
빈집에 밤 깊자 썰렁 냉기가 돌아
뜰에 내린 서리 쓸어내리고 섬돌을 내려섰네
서리는 쓸겠는데 달빛은 쓸어내기 어려워
달빛 함께 어우러지라고 그냥 두었네
달타령 민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이월에 뜨는 저 달은 동동주를 먹는 달
삼월에 뜨는 달은 처녀 가슴을 태우는 달
사월에 뜨는 달은 석가모니 탄생한 달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오월에 뜨는 저 달은 단오 그네 뛰는 달
유월에 뜨는 저 달은 유두 밀떡 먹는 달
칠월에 뜨는 저 달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달
팔월에 뜨는 달은 강강수월래 뛰는 달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구월에 뜨는 달은 풍년가를 부르는 달
시월에 뜨는 달은 문풍지를 바르는 달
십일월에 뜨는 달은 동지 팥죽을 먹는 달
십이 월에 뜨는 달은 임 그리워 뜨는 달
달. 포도. 잎사귀 장만영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호젓하구나
<시건설> .1936년
만월 김명수(1945 - ) 경북 안동
내 죄지은 사랑에 대하여
그대 만나고 돌아오는 길
둥근 달이 내 뒤를 따라왔어요
죄짓고 고개 숙여 걷는 내 곁을
손잡고 함께 걷자 따라 왔어요
만월 이원규(1962 -) 경북 문경
아이 밴 여자는 아름답다
감히 누가 있어
저 달을 보며
딴 마음을 먹겠는가
뼛속 환한 달밤
태아들이 절구방아를 찧고 있다
만월 함동선
어둠의 들국화
보라 보라 보랏빛 숨소리 들리는
다리 놓아주고
우리 내외한테는
금가락지만한 사랑을 둘러끼우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바보 달 유승도
겨울이 찾아온 들판에 달빛이 쌓여있다
쌓여진 빛을 따라 고개를 치켜드니 달까지 닿았다
빛을 쌓아 무엇하게
잠도 안자고
반달 김소월
희멀금하여 떠다, 하늘 위에
빛 죽은 반달이 언제 올랐나!
바람은 나온다, 저녁은 춥구나
흰 물가엔 뚜렷이 해가 드누나
어두컴컴한 풀 없는 들은
찬 안개 위로 떠 흐른다
아, 겨울은 깊었다, 내 몸에는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는 이 설움아!
가는 님은 가슴의 사랑까지 없애고 가고
젊음은 늙음으로 바뀌어 든다
들가시나무의 밤 드는 검은 가지
잎새들만 저녁 빛에 희끄무레 꽃지듯 한다
반달 김준태
내가 취하면 사람들은 모조리 비틀거린다
내가 취하면 6월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든다
북한에 반달이 비치면 정월 보름보다도
더 밝으니 이상하다
왼발로 걸으면 오른발에 날개가 돋아나는 밤아
나는 따가운 물을 마시고 이 땅을 걸었을 뿐
그렇다, 눈을 감을 때만이 미행하는 놈들이 보이고
입술을 다물 때만이 미행하는 놈들의 목소리가
어찌하여 내 몸뚱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새어 나가는가
오른발로 어둠을 밟아야만이 왼발에 기적이 생긴다
왼발로 남한을 걸어야만이 오른발에 북한이 밟힌다
허허, 남하닝 아니면 북한 주엥 어느 한쪽이
밤하늘에 저런 반달을 토해 놓았는가 부다
캄캄한 하늘로 날아가서 토해 놓았는가 부다
반달 윤석중
반달 이량연 李亮淵 ( 조선)
옥으로 거울 갈아 푸른 하늘에 내걸었더니
그 밝은 빛 여인의 몸치장 비추기에 알맞아
복비와 직녀가 서로 가지려 다투어
반은 구름 사이 반은 물속으로 떨어져 나갔구나
복비직녀ㅡ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여 상강 湘江에 몸을 던져 죽은 순임금의 아내 복비와
칠석날 은하수를 건너 일년에 한 번 견우를 만난다는 직녀
반달 이정록
이사를 가야 한다
해 짧은 겨울 저녁
지붕 위에
식구들 운동화를 빨아 넣었다
저도 가고 싶었나
뒤꿈치 쪽에 반달 하나씩
얼음으로 웅크리고 있다
날 밝으면 같이 가자
안방 아래목에 신문지 요를 깔아주자
스르르, 오줌까지 싸버렸다
젖은 몸에
시장기나 앉히고 길마중 나갔나
울상이 된 신문지 위에
생고구마 껍질이 놓여 있다
고구마 껍질에도
눈길 위에도, 새벽
달빛이 서려 있다
저도 따라가려고
고구마 한 조각,
앞산 위에 떠 있다
반달 황진이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견우가 떠나간 뒤
수심 겨워 저 하늘에 던져버린 것
방아 찧는 여인 유영길(조선)
옥 절구공이 높고 낮게 가녀린 팔 가볍고
비단 저고리 때때로 들려 눈처럼 하얀 살갗 드러나네
달나라에서 장생약 찧어오던 선녀런가
인간 세상에 귀양와서 그 솜씨 그대로이네
보름달 나호열
보름달이 가고 있어요
둥글어서
동그라미가 굴러가는 듯
한 줄기 직선이 남아 있어요
물 한 방울 적시지 않고 강물 건너고
울울한 숲의 나뭇가지들을 흔들지 않아
새들은 깊은 잠을 깨지 않아요
빛나면서도 뜨겁지 않아요
천 만개의 국화 송이가 일시에 피어오르면
그 향기가 저렇게 빛날까요
천 만개의 촛불을 한꺼번에 밝히면
깊은 우물 속에서 길어 올리는
이제 막 태어난 낱말 하나를
배울 수 있을까요 읽어낼 수 있을까요
보름달이 가고 있어요
동글어서 동그라미가 굴러가는 듯
말없음표가 뚝뚝 세상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입을 다물고 침묵을 배우고 있어요
보름달 노창선(1954 - ) 충북 청원. 충주대교수
매우 고맙습니다
당신의 환한 얼굴 보여주시니
잔잔한 시냇물도 보이고
새로 돋은 연둣빛 풀잎도
4월 바람에 우우 물가로 몰려나옵니다
은은한 당신의 저고리 같은 마음으로
하얗게 물든 싸리꽃도 피겠습니다
달의 향내 흩뿌려진 꽃그늘 아래
아무래도 오늘밤
진달래술 한 잔마저 기울이면
저 높은 산 가슴 어디에
보름달 눈부시도록 솟아나겠습니다
보름달 정대호
동쪽으로 걷는데
산 위에서 환히 웃으며 솟는 얼굴
내 어린 날 벼 베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얼굴
머릿수건을 벗어 치마의 먼지를 털며
골목으로 들어서는 환한 얼굴
한 해의 노동이 익어서 돌아오는 얼굴
산에서 보는 달 왕양명(1472-1529) 명나라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산중에서 후학들에게 왕수인(명나라)
시냇가에 앉아서 흐르는 물 보노라니
흘러가는 물 따라 내 마음도 한가롭네
산중에 달이 뜬 줄 몰랐는데
소나무 그림자 옷자락에 얼룩지네
서재에서 바라보는 달 양만리(송나라)
한가위 가까워지면서 달 더욱 맑아
검푸른 하늘에 얼음쟁반 걸렸구나
내 문득 깨달았나니 오늘 밤 저 밝은 달
하늘에 붙어 있는 게 아니고 홀로 가고 있음을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인수
ㅡ 달빛, 그 노숙의 날개
길이 막히거든 노숙을 해봐라
달빛 아래
나무의 낯선 낯선 이파리들이 눈앞을 저어 가면서
가장 먼 별들이 귓전으로 가슴으로 스며 내리면서
풀벌레 소리들 무수히 번져 에워싸면서
그대 겨드랑이에다가 하염없이 짜넣는
그 달빛이 무엇이 되는지
팔 벌리고 누우면 허수아비 같고
돌아누우면 좀 춥고
몸 웅크리면 섬같이 되어서
날고 싶을 것이다
달빛 아래
그 어디로 길이 열리는지
먼 타관으로 가서 노숙을 해봐라
새벽달 김용화
소쩍새 울음
잦아드는 밤
배꽃가지 꺾어 들고 숨죽이던
달아
흐드러진
풀꽃더미 속에서
아린 가슴 뜯어내며 뒤척이던
달아
옷고름 매고
남몰래 산을 넘다
대추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는 저
달아
소영위제素榮爲題 이상
1
달빛 속에 있는 네 얼굴 앞에서
내 얼굴은 한 장 얇은 피부가 되어
너를 칭찬하는 내 말씀이 발음하지 아니하고
미닫이를 간지르는 한숨처럼
동백 꽃밭 내음새 지니고 있는 네 머리털 속으로 기어들면서
모심드키 내 설움을 하나하나 심어가네나
2
질흙발 헤매일 적에
네 구두 뒤축이 눌러 놓는 자국에 비내려 가득 괴었으니
이는 온갖 네 거짓말 네 농담에 한없이 고단한 이 설움을
곡으로 울기 전에 따에 놓아
하늘에 부어 놓는 내 억울한 술잔
네 발자국이 진흙밭을 헤매이며 헤뜨려 놓음이냐
3
달빛이 내 등에 묻은 거적 자국에 앉으면
내 그림자에는 실고추 같은 피가 아물거리고
대신 혈관에는 달빛에 놀래인 냉수가 방울방울 젖기로니
너는 내 벽돌을 씹어 삼킨 원통하게 배고파
이지러진 헝겊 심장을 들여다 보면서 어항이라 하느냐
슬픈 달밤 하기와라 사쿠타로(1886-1942) 일본 군마현 마에바 시 출생.
도둑개란 놈이,
썩은 선착장 달을 향해 짖고 있다
영혼이 귀 기울이자
음산한 소리를 내며
노오란 아가씨들이 합창하고 있다
합창하고 있다
선착장 캄캄한 돌담에서
늘,
어째 난 이런가
개야,
창백한 불행한 개야
아름다운 밤의 여왕 워즈워드
아름다운 밤의 여왕
하늘 높이 흩어진 구름을 헤치며 가네
가끔씩 그녀는
짙은 어둠 속에 머리를 가리고
바라보네, 그리고 눈여겨 보면
구름의 가장자리 밝아지면서
달은 버둥대고 나타나
다시금 청명한 하늘을 걷는다네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 이백
아미산의 반달이 가을에
그림자만 평강을 따라 흐르네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을 가는데
그대를 못만나고 유주로 간다
여름에는 저녁을 오규원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을도
달빛도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여름의 달밤 김소월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밤이여
그지없이 거룩한 하늘로서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내려라
행복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북받았어라
뻗어뻗어 오르는 가시덩굴도
희미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에 멱감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 들어라
우긋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자추는 향기를 두고 가는데
인가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종일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들도 편안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둑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의 우는 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밭 가운데의 우물가에는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의 넘는 곡조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으 목숨의
정열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은
서느러운 여름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에서 지내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에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기울이며
흰 달의 금물결에 노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하여라 좋은 한때를
흘러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을
여름의 어스러한 달밤 속에서
꿈 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옥문관의 밝은 달 이백
밝은 달은 천산에 떠올라 창망한 구름 속을 비추고
바람은 몇 만리를 날아 옥문관에 불어닥친다
한은 백등도를 정벌하고 오랑캐는 청해만을 노리니
자고 이래 전쟁터인 이곳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없구나
병사들은 변방의 마을을 보고 귀향 생각에 얼굴에는 근심이 어려
높은 성루에서 고향 생각에 탄식이 끊이지를 않는구나
우물 속의 달 이규보 李奎報(고려)
산중의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
호리병 속에 물과 함께 길었네
절에 들어가면 깨닫게 될 것
병 기울여도 그 속에 달이 없다는 것을
움직이는 달 민구(1983 - ) 인천
달이 먼저 나를 물기도 한다
줄을 풀고 창문으로 넘어 들어온 달이 구석에 나를 몱ㅎ 어금니를 드러낸다
오줌발이 얼마나 센지 사방 벽으로 튀어 잘 지워지지 않는다
달은 나무를 잘 탄다
어두운 강을 곧잘 건넌다
물결에 비벼도 지워지지 않는 저 온순한 발자국은 한겨울 빙판을 내리치는 커다란 해머
수천수만의 얼음 조각들이 밤하늘에 박혀 있다
순식간에 하늘을 나는 박새에 오른 달, 민첩하다
고양이 꼬리를 물다가 돌아보는 순간, 지붕 위를 걸어나가며 케케케 웃고 있다
멀쩡한 사내를 부축하는 달, 문지방에 걸터앉은 달, 작두로 깎은 발톱이 거리로 튀었나?
굶주린 소가 여물통을 바라본다
물에 뜬 시체를 가만히 덮고 있는 담요여
상갓집 늦은 조문객이 맨 근사한 타이여
공중에 집 한 채 놓고 숨죽여 울던 검은 짐승은
지금 해와 교미 중이다
월색 김소월
달빛은 밝고 귀뚜라미 울 때는
우둑히 싀멋없이 잡고 섰든 그대를
생각하는 밤이여, 오오 오늘 밤
그대 찾아 데리고 서울로 가나?
월식 안도현
젊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달을 따주겠다고 했겠지요
달의 테두리를 오려 술잔을 만들고 자전거 바퀴를 만들고 달의 속을 파내 복숭아 통조림을 만들어
먹어주겠노라 했겠지요
오래 전 아버지 혼자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간 밤이 있었지요
사춘기의 풀벌레가 몹시 삑걱거리며 울던 그 밤,
그런데 누군가 달의 이마에다 천근이나 되는 못을 이미 박아놓았던 거에요
그 못에다 후줄근한 작업복 바지를 걸어놓은 것은 달빛이었고요
세월이 가도 늙지 못한 아버지는 포충망으로 밤마다 쓰라리게 우는 별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끌어모았을 거에요
아버지 그림자가 달을 가린 줄도 모르고 어머니,
그리하여 평생 캄캄한 이슬의 눈을 뜨고 살았겠지요
월하독작月下獨酌 이백
꽃 사이 한 병 술
친구 없이 혼자 든다
술잔 들어 달님을 청하니
그림자랑 세사람이 된다
달님은 마실 줄도 모르고
그림자는 흉내만 내는구나
잠깐 달님이랑 그림자랑 함께
즐기자, 이 몸이 가기 전에
내 노래에 달님은 서성거리고
내 춤에 그림자는 흐늘거린다
취하기 전엔 함께 즐겁지만
취한 다음엔 각각 흩어지리
영원히 맺은 담담한 우정
우리의 기약은 아득한 은하수
월훈月暈 박용래
첩첩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 집. 외딴 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듣는 월훈
문학사상.4호. 1976년 3월
조각달 문정희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피 말리는 거역으로
하얗게 뜬 새벽
거짓말처럼
죽은 자들 속으로
당신은 떠나가고
나는 하얀 과거 하나 더 가졌다
당신 묻을 때
내 반쪽도 떼어서 같이 묻었다
검은 하늘에
조각달이 피었다
쪽배로 큰 바다 건너서 니흥유(고려)
천년 오랜 역사 삼한의 사절
만리 큰 물결을 일엽주로 넘었네
동쪽 나라에 머무는 동안 어느덧 세밑
산마루에 걸린 달 누각 아래 쓸쓸한 그림자
종이 바른 창 곽진(송나라)
새하얀 종이창 마음 절로 한가로운데
희기는 시내 위의 뜬구름이요 얇기는 살얼음
내사 달빛 싫어서가 아니고
바람이 독서등에 불어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네
초승달 곽말약(1892-1978)중국
초승달이 낫 같아
산마루의 나무를 베는데
땅 위에 넘어져도 소리 나지않고
곁가지 길 위에 가로 걸리네
초승달 서재환(1961 - ) 전남 담양
얄미운 새앙쥐가
하늘에도 사나 봐요
낮에는 숨었다가
밤만 되면 야금야금
둥근 달
다 갉아먹고
손톱만큼 남겼어요
초승달 함민복
배고픈 소가
쓰윽
혓바닥을 휘여
서걱서걱
옥수수대궁을 씹어 먹을 듯
초승달 황정자
가지 끝에 걸려 있는
서슬 퍼런 초승달은
지척이 천리인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오뉴월
가슴시린 한
베어내는 은장도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피타고라스의 달 정진영
달이 숫자 모양으로 떠오르는 시간
경리과 K과장은 버스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무심히 본다
어둠 속에 고여 있던 눈알이 희미하게 유리 위로 튀어나온다
눈동자 속으로 빌딩 창문들이 금전출납부 잔고란 넘겨지듯 휙휙 지나간다
종일 자신이 들여다보던 아리비아 숫자들이 꿈틀거린다
123456789 눈알 속으로 파고들려는 듯 일제히 각을 뒤튼다
완전한 수로 끝나지 못해 버석거리는 숫자들
그의 후줄근한 오늘 뒤에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점점 더 눈알 안쪽이 부풀어 오른다
터질 것 같아, 아아 눈꺼풀을 질끈 내려감는다
그의 어지러운 하루가 으깨진다
고였던 숫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텅 비워지는 눈동자 속, 드디어 숫자 10이 그의 안구 속으로 굴러 들어가 환히 박힌다
해와 달 시경
ㅡ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의 심정을 읊은 노래
해와 달은 변함없이 온누리를 비추고 있는데
내 임은 이 몸을 옛날처럼 사랑해 주지 않네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어찌해 날 안 돌보실까
해와 달은 변함없이 온누리를 덮어주고 있는데
내 임은 이 몸을 옛날처럼 좋아하지 않네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어찌해 이 정성 안 받으실까
해와 달은 변함없이 동산에서 떠오르고 있는데
내 임은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지 않네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날 잊지는 못하실 것을
해와 달은 변함없이 동산에서 떠오르고 있는데
부모님이여 날 기르실 적 이런 근심 없게 못했나요
임의 마음 딴 데 있다지만 내게 의리조차 없이 하네
화남 풍경 박판식(1973 - ) 함양
세상의 모든 물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부력, 상인은
새끼 밴 줄도 모르고 어미 당나귀를 재촉하였다
달빛은 파랗게 빛나고
아직 새도 깨어나지 않은 어두운 길을
온몸으로 채찍 받으며
어미는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으로 가는 길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한 채 거꾸로 누워 구름처럼 둥둥 떠가고
황홀한 달빛 김영랑
황홀한 달빛
바다는 은장
천지는 꿈인 양
이리 고요하다
부르면 내려올 듯
정든 달은
맑고 은은한 노래
울려날 듯
저 은장 위에
떨어진단들
달이야 설마
깨어질라고
떨어져 보라
저 달 어서 떨어져라
그 혼란스럼
아름다운 천둥지둥
호젓한 삼경
산 위에 흔히
꿈꾸는 바다
깨울 수 없다
흰달 베들렌느(1844-1896)
흰 달이
숲 속에서 빛난다
가지마다
소리를 낸다
나뭇잎 아래서 ...
아, 사랑하는 사람아
연못이 반사한다
깊은 거울처럼
바람이 우는
검은 실버들의
그림자를 ...
꿈을 꾸자. 이제 우리들은
푸근하고 부드러운
고요가
달빛 빛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아 ...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순간
훗날 아내가 된 마틸드에게 바친 사랑시다
그는 말라르메, 랭보와 더불어 프랑스 상징파 3대 거장이다
가장 섬세하고 음악적인 기법의 서정시인이다
1870년 마틸드와 결혼했으며, 그해부터 랭보와 교우했다
1872년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런던으로 건너갔다
1873년 권총으로 랭보를 쏘아 2년간 감옥생활을 했고 ...카톨릭에 귀의했다
1894년 詩王 으로 뽑혔다
달나라
1961년 4월 12일 소련은
사상 첫 유인우주선인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그 안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타고 있었다
"여기서 지구가 아주 잘 보인다
아름답다
기분이 매우 좋다
지구는 푸른 색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되기 위해 최종 심사에 오른 사람은 19명이었다
모두가 뛰어난 조건을 갖추고 있어 누가 선발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관문은 우주선 탑승 시험
그러나 여기서 아주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다른 후보들은 모두 구두를 신은 채 우주선에 오를 때
가가린은 구두를 벗고 우주선에 올랐다
이것이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켜 우주인으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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