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예절

제사의 종류

blueroad 2016. 1. 2. 09:03

 

제사의 종류


사시제(四時祭)

현대에 와선 그 의미기 퇴색된 제사.

계절마다 가운데 달인 봄 2월, 여름 5월, 가을 8월, 겨울 11월에 지내는 제사.

보통은 시제라 줄여 부르며 고조부모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 제사.

제사 하루 전날 정침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신주 모실 자리를 마련한다

방 한가운데 향탁을 놓고 그 위에 향로 향합 촛대를 놓는다.

주부는 제기를 갖추어 손질하고 제찬을 정갈하게 마련한다

밤새도록 촛불을 밝혀두고 다음날 날이 밝으면 아침 일직 일어나
제주 이하 모든 참사자는 제복을 입고 사당으로 나가 분향한 뒤 신주를 정침으로 모신다,

제사 지내는 순서는 참신, 강신, 진찬이 끝나면 초헌, 아헌, 종헌에 이어 유식합문계문을 한 뒤 수조를 한다.

사신하고 나서 납주하면 상을 물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이제(부모 제사)

부모를 위한 정기 계절 제사

9월에 행하는 것은 이때가 만물이 이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진행 절차는 시제와 같고 축문의 문구만 조금 다르다.

하루 전 신위 모실 자리를 마련하고 제찬을 준비한다.

제삿날 동이 틀 무렵 일직 일어나 제상을 진설한 뒤 제주 이하가 옷을 갈아입고
사당에 나가 신주를 정침으로 모셔 내와 제사를 지낸다.

제사는 참신, 강신, 진찬, 초헌, 아헌, 종헌,유식, 합문, 계문, 수조, 사신, 납주,철상, 준의 순으로 진행된다.




기일 제사(忌日祭祀)

기제라 흔히 부르며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올리는 제사.

전통적으로 기제사가 중시되어 모든 제사에 우선되었고 제수도 가장 풍성하게 차린다.

기제의 대상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 고조부 및 배우자이다
(3촌 이내의 존속 동항렬 또는 비존속 친족에 대하여는 기제를 지낼 수 있다)

제사 시간은 고인이 돌아가신 날 자정부터 새벽 1시 사이에 한다.

제사는 제주의 집에서 지내며 고인의 장자나 장손이 제주로서 제사를 주제한다.
장지나 장손이 없을 때는 차자나 차손이 주관한다.

이날은 술을 마시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으며
검정 두루마기, 흰옷, 흰 띠를 착용하고 저녁에는 안방에 들지 않고 사랑채에서 잔다.




묘제(墓祭)

기제를 받들지 않는 조상에게 묘지에서 지내는 제사.

주로 10월에 많이 행한다. 음력 10월에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그 위 대의 조상,
즉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한 제사는 1년에 한 번 지내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묘제는 그 조상의 묘소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나,
산소를 잃어버리거나 갈 상황이 안되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연고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시제에는 직계 자손, 방계 자손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참석할 수 있다.


연시제

정월 초하루 아침에 드리는 제사.

4대조까지 모셨던 제사를 요즘은 2대까지만 모신다.

차례 드리는 방법은 여러분을 한꺼번에 모시며 지방은 합사하는 경우 한 종이에 나란히 쓴다

메는 떡국으로 대신한다.


차례

오늘날 제사의 상징처럼 인식되지만, 예전에는 속절 제사라 하여 예법에 있는 제사가 아니었다.

음력으로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 그리고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날에 간단하게 지내는 제사로
보통 아침이나 낮에 지낸다

요즘은 정월 초하루의 연시제와 추석절의 절사가 이에 해당된다.

제수와 절차는 기제에 따르지만 무축단작이라 하여 축문이 없고 술은 한 잔만 올린다.



한식

한식은 청명 다음날로 동짓날로부터 계산하여 105일째 되는 날을 말한다.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관습이다.


산신제

묘사와 제사에는 먼저 산신제를 지낸다.

이때는 향, 모사 없이 지낸다.

절사에도 산신제가 있으나 이는 절사의 진찬과 절차대로 행한다.

 

《조상제사의 근원과 제사(祭祀) 모시는 시간의 바른 상식》

 

 

 

 

사가(史家)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제사(祭祀) 관습은 

고려말 중국으로 부터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에서 제사는 원래 지금처럼 죽은 사람을 위한 제례가 아니고

종손을 높이는 의미로 부모를 높은 곳에 모시고

제사 형식의 예를 올렸던 것이다.

그것도 모든 백성이 아닌 황제에게만 적용되던 제사가

그렇게 해야만 후손이 잘 된다는 유혹을 받은 제후들이 따라서 하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무너지는 사회질서 속에서

평민들도 자기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

다투어 실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후에 죽은 부모에게로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제사에 대한 이론적인 뒷받침이 되기는 훨씬 후대인

송나라 때에 주자학(朱子學)을 창안한 주희(주자)였다고 한다.

 

이것이 주자학과 함께 우리나라에 도입이 되어

이퇴계에 의해 '성리학'으로 정립되고

아울러 일반 민가에까지 전해져 제사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사대부 등 특수층 사람들에게만 제사가 이루어지다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의 이태조에 의해 서민들에도 널리 장려 되었다.

이후에도 제사 문제는 조정의 사화(士禍)의 빌미가 되는 등

많은 굴곡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제례법은 문중 마다 다소 다르기도해

'가가례문(家家禮文)'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또 '남의 제사상에 밤놔라 대추놔라 한다'는 말도 생겼다.

제사상 진설방법 등 제례 격식은 문중 마다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전통 제례법에 따른 제사 모시는 시간은 대체로 같다.

물론 시대 흐름에 따라 지금의 제례에 있어서는

제사 모시는 시간도 크게 달라지고는 있다.

 

그렇다면 격식에 맞는 제대로된 제사 모시는 시간은 언제일까?

주자가례에 따르면 제사날인 기일의 새벽에

제사음식을 진설한다라고 되어 있고,

전통 제례법상에서도 기일날 자시(子時)에 제사를 모시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원칙은 지금에도 이어져

정부가 1969년에 제정하고 2008년 10월 14일에 전문개정, 공포한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도 부분적으로 준용되고 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제20조 기제사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20조(기제사)

① 기제사의 대상은 제주로 부터 2대조까지 한다.

② 기제사는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에 제주의 가정에서 지낸다.

 

제사를 모시는 시간인 자시(子時)를

지금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이다 .

그러나 이것은 엄밀한 계산법에 의한 정확한 시간은 아니다,

 우리의 정확한 시간은 밤 11시30분 부터 새벽 1시29분까지가 맞다.

전자는 일본식 기준이고 후자는 한국식 기준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한국의 문화 말살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간 개념 또한 일본식으로 바꾸어 동경의 표준시 시간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표준시인 한국 경도 127.5도로 기준을 삼으면

밤 11시30분에서 다음날 새벽 1시 29분이 제대로된 시간이다.

그러나 습관대로 대부분 밤 11시부터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제사는 자시(子時)에 지낼까?

동양학의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자시(子時)는 사후세계인 저승을 비롯하여 천상(天上)의 문이 열려

음신(陰神)들이나 음귀(陰鬼)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간대이다.

저승의 저승사자도 음신으로써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볼일을 보고

아침 동이 트기전, 새벽닭이 울기 전에 저승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태양이 쏟아지는 빛은 양(陽)의 기운이므로  

영체(靈體)가 빛을 맞게되면 치명타가 되어

증발,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이란다.

 

또 축시(丑時)에는 땅이 열리고

절(寺)이 타종으로 만물 중 식물, 동물을 깨우는 시간이며,

인시(寅時)는 새벽 닭이 울고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대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심오(?)한 뜻에서 자시(子時)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란다.

옛날에는 시계가 없어서 밤 11시경부터 새벽1시경을 자시로, 같은 날로 쳤다.

그러므로 제사는 돌아가신날 새벽(子時)에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은 하루가 시작되는 첫 시간이므로

이 시간에 조상의 제사를 올린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사정상 일찍 제사를 지낸다고 초저녁에들 많이 지내는데

그렇게 되면 기일 전날,

즉 살아 계신 날 제사를 모시는 결과가 되므로 틀린 것이다.

 시대 조류에 맞춰 불가피하게 시간을 조정하여 일찍 지내려면

기일 당일 해가진 초저녁부터 밤 11시 전에 지내야 되는 것이다.

밤 11시가 지나면 다음 날로 해석 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하면 그 것도 자시(子時)는 아니니까

전통 제례법에서는 벗어난 것이지만

제사를 생략할 수도 없고, 후손들의 현실적인 사정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차선책인 대안으로 제사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유교 풍습이 대체로 많이 남아 있는 경북 지역(특히 안동 지역)의

명문 종가들은 아직도 자시에 제사 모시기를 고집하는 문중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과 종가의 유지·발전을 위한 선택 등을 이유로

제사 시간을 기일 초저녁으로 바꾸는 사례가 점차 늘고도 있다.

또 예서대로 지내오던 4대 봉사(고조까지)도 점차 2대 봉사로 줄어 들고

더러는 부와 모의 제사를 합사하여 같은 날 함께 지내거나

후손들의 편의에 따라 제사 날에 가까운 주말의

별도 날을 정해 지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 제례에서 절차나 과정을 생략하거나 바꾸기는 쉽지 않다

반면, 시간과 공간 등 제례를 진행하는 기반 조건은 변화가 쉬운 편이다.

경북의 각 종가들도 환경과 시대 변화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러는 경제적 여건,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제사를 아예 지내지 않거나

줄여가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명문 종가 중 명문 종가인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종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북지역 (135位),

그 중에서도 안동지역(47位)을 중심으로

종가들의 제사 모시는 시간은 언제인지 알아보자.

 

 조선 시대에는 제사를 4대조까지만 모시고

그 이후는 신주를 묻도록 나라에서 엄하게 규정했었지만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과 학문이 높은 인물에 대해

4대 봉사를 끝내고도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런한 불천위는 가문의 명예이고 자랑이다.

 

불천위 제사에 대하여서는 필자가 지난해 (2013. 3. 3.) 동창회 카페에

이미 구체적으로 소개한바 있어서 여기에서 다시 소개하는 것은 생략하고, 

경북지역의 많은 불천위 중 자료가 확보, 파악된 일부 20여 위(位)의

불천위 제사를 요약 정리했다.

해마다 조상이 죽은 날에 지내는 일반 '기제사'도

기본 제례방식은 불천위 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불천위 제사 실태를 파악하면

'기제사'와 관련한 흐름도 미루어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자료를 정리 하면서 모두들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 조상 제례도

시대의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 느껴졌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갑골학 박사인 김경일 교수가

2001년에 쓴 자신의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의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다고 비판하고,

핏줄, 혈연, 학연 등 유교의 지배를 벗어 나지 못한 한국사에 일침을 가하면서

유교의 세가지 특징인 인문의식, 온고지신, 조상숭배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글이 문득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불천위 제사 실태 현황〉

 

 

 

■ 점필제 김종직 (1431 - 1492) 불천위 제사

▷ 본관 ; 선산, (밀양 태생)

▷ 종택 ; 경북 고령군 쌍림면

▷ 제주(祭主) ; 18대 종손 김진규 (1960년생)

▷ 제사 시간 ; 당초 기일 자시를 기준으로 하여 기일 밤 1시에 지냈으나

2014년 부터 기일 초저녁으로 옮겨 지내고 있음.

※ 주요 약력 ; 점필제 김종직은 사림파의 사조(師祖)로

연산군 때 「조의제문」과

관련한 '무오사화' 때 부관 참시되었으나

중종반정 후 신원되어 숙종 때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음.

 

 

■ 농암 이현보 (1467 - 1555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영천 (안동 태생)

▷ 종택 ;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각송리 농암종택

▷ 제주(祭主) ; 17대 종손 이성원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약력 ; 경상도 관찰사, 충주목사, 호조판서, 청백리

 

■ 퇴계 이황(1501 - 1570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진성(진보) (안동 태생)

▷ 종택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퇴계종택

▷ 제주(祭主) ; 16대 종손 이근필(1932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약력 ; 조선 중기 문신 학자, 대성리학자,

단양군수. 안동대도호부사, 이조판서,

조정으로 부터 수차 벼슬이 주어졌으나 모두 사양하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 문묘배향,

 

■ 소재 노수신(1515 - 1590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광주

▷ 종택 ; 경북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 제주 ; 13대 종손 노병학(1961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초저녁

※ 주요 약력 ; 조선중기문신, 사간원 대사간, 이조 판서,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까지 올랐으나 기축옥사 때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파직.

숙종 때 시호 문간(文簡) 

 

■ 응와 이원조(1792 - 1871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성산

▷ 종택 ; 경북 성주시 한개마을

▷ 제주 ; 5대 종손 이수학 (75세, 2014년 현재) 

▷제사 시간 ; 기일 밤 9시 (* 기제사는 2대조까지로 축소)

※ 주요 약력 ; 조선 후기 문신, 사간원 정언, 강릉부사, 제주목사,

대사간, 병조참판, 순조, 헌종, 철종, 고종의

4조(四朝)에 걸쳐 벼슬을 함. 시호; 정헌

 

■ 서애 류성룡(1542 - 1607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풍산 (의성 외가에서 출생)

▷ 종택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충효당

▷ 제주 ; 류영하(88세, 2014년 나이)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약력 ; 병조 판서, 좌의정, 영의정,

         징빙록 집필, 시호 ; 문충

 

■ 정재 류치명(1777 -1861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전주

▷ 종택 ;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 제주 ; 6대 종손 류성호(1949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초저녁 (* 신주대신 지방으로 제사)

※ 주요 약력 ;  사간원 정언, 대사간, 병조 참판, 춘추관동지사.

조선시대 인물사전인 '국조 인물고'에 등재된 인물로 철종 때

장헌세자 추존하는 문제로 상소를 올렸다가 평안도와 전라도로 유배.

 

■ 대산 이상정(1710 -1781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한산

▷ 종택 ; 경북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 제주; 종손 이방수(1950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약력 ; 사간원 정언, 예조 참의, 형조 참의, 이조 판서,

시호 ; 문경.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

 

■ 충제 권벌(1478 - 1548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안동 (안동 북후면 도촌리 출생)

▷ 종택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달실마을

▷ 제주 ; 17대 종손 권정우 (1922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0시

※ 주요 약력 ; 한성판윤, 병조·예조판서,승정대부, 우찬성,

윤원형을 위시한 소윤일파의 전행을 비판한 일과 연류, 무고로  

평안도 삭주로 유배 후 사망. 좌의정·영의정 추증.

시호 ; 충정공

 

■ 죽유 오은 (1540 - 1617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고창

▷ 종택 ; 경북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 제주 ; 15대 종손 오용원(1965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초저녁 ( 제사 종료 시간 밤 10시경)

 ※ 주요 약력 ; 조선 중기 문신, 통정대부

 

■ 귀암 이원정 (1622 - 1680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광주

▷ 종택 ;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제주 ; 13대 종손 이필주 (1943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저녁 8시경

※ 주요 약력 ; 조선 현종, 숙종 때 문신, 형조, 호조 참판, 도승지,

대사성, 이조 판서, 영의정 추증.

 

■ 학봉 김성일 (1538 - 1593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의성

▷ 종택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 제주 ; 15대 종손 김종길 (1941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0시 30분경

※ 주요 약력 ; 일본 통신사, 경상도 초유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임진란 때 공신, 진주대첩 총지휘.

 

■ 탁영 김일손 (1464 - 1498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김해 (청도 출생)

▷ 종택 ; 경북 청도군 화양읍 토평1리

▷ 제주 ; 18대 종손 김상인 (1949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초저녁

※ 주요 약력 ; 춘추관직, 예문관직,경연직을 두루 거침.

연산군, 무오사화 때 '조의제문'과 관련된 무고로 능지처참 당함.

중종 2년에 누명을 벗고 몰수 당했던 가산을 돌려 받음.

시호 ; 문민

 

■ 송재 손소 (1433 - 1484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경주 (청송 안덕 출생)

▷ 종택 ;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 마을 서백당

▷ 제주 ; 21대 종손 손성훈

▷ 제사 시간 ; 기일 저녁 12시 30분경

(종손의 뜻은 기일 초저녁이나 문중의 반대)

※ 주요 약력 ; 조선 초기 문신, 병조·공조 참의,

성주·진주 목사, 안동대도호부사, 예문관,

 세조 때 이시애 난 평정으로 적개공신 책봉. 이조 판서 증직.

시호 ; 양민

 

■ 잠와 최진립 (1568 - 1636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경주

▷종택 ; 경주시 내남면 이조3리 충의당

▷ 제주 ; 14대 종손 최채량 ( 1933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약력 ; 조선시대 무신 장군, 경흥 부사, 병조·공조 참판,

경기·충청·황해 삼도수군통제사,

임란 때 의병 모아 왜적과 싸우다 전사. 선무공신에 책봉.

시호 ; 정무공

 

■ 단계 하위지 (1412 - 1456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진주 (경북 선산 출생)

▷ 종택 ; 경북 안동시 서후면 교리

▷ 제주 ; 18대 종손 하용락 (1950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약력 ; 조선 전기 문신, 집현전 교리, 예조 참판,

예조 판서, 집현전 직제학, 단종 복위 관련하여 순절(사륙신),

사륙신 중 박팽년과 함께 후손이 남아 있음.

숙종 때 이조 판서로 추증. 시호 ; 충렬

 

■ 옥천 조덕린 (1658 - 1737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한양

▷ 종택 ;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 제주 ; 11대 종손 조우철 (1967년생), 서울 거주 

▷ 제사 시간 ; 1988년 부터 파격적으로 기일을 양력으로 환산,

변경하여 午時(오전 11시 = 오후 1시)에 제사를 지내고 있음.

※ 주요 약력 ; 조선 후기 문신, 홍문관 교리, 사간원 사간,

예조 좌랑, 동부승지, 79세의 나이에 '십소조' 관련 무고,

노론의 탄핵으로 제주도로 유배 가다가 사망.

 

■ 백불암 최흥원 (1705 - 1786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경주

▷ 종택 ; 대구시 동구 둔산동

▷ 제주 ; 9대 종손 최진돈

▷ 제사 시간 ; 20여 년 전부터 기일 저녁 8시경으로 변경

(* 지금도 제사 때 곡을 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음)

※ 주요 약력 ; 1729년에 향시에 합격했으나 시험관이 시험장에서

뇌물을 요구하자 정도가 아니라 거절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을 중시하는 삶을 살았음.

대산 이상정, 남야 박손경과 함께 '영남삼로(嶺南三老)'로 불리며

당대 유림들의 존경을 받던 대구지역 대표적 인물.

추후 승지로 추증 . 시호 ; 문정

 

■ 계서 성이성 (1595 - 1664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창녕 (경북 봉화 출생)

▷ 종택 ;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 제주 ; 13대 종손 성기호 ( 1941년생)

▷ 제사 시간 ; 기일 자시

※ 주요 악력 ; 조선 후기 문신, 성리학자, 청백리, 4 차례의  암행어사로

호남을 두차례 암행 했음.

봉화에서 태어나 13세 때 남원 부사인 부친 '성안의'을 따라 

남원으로 갔으며  1616년 생원시에 합격, 병조 정량, 합천 현감,

강계·진주 부사를 지냈음.

소설 「춘향전」의 이몽룡의 실제 인물로서  '춘향전'의

"금주미주천인혈"은 그가 실제 지은 한시임.

춘향전은 판소리, 소설, 희극, 인형극, 민담 등으로 확산되었는데

당시 양반가 자제의 스캔들이라 하여 조정이 관을 시켜

성몽룡을 이몽룡으로, 성이 없던 기생 춘향을 성춘향으로 바꾸어

시연 했다는 것임.

이러한 사실은 10여 년 전 연세대 문과대학 설성경 교수의

1999년 논문을 통해 밝혀지면서 '계서 종택'을 찾는 관광객이

하루 200~300여 명에 이른다고 함.

 

■ 보백당 김계행 (1431 - 1517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신) 안동 (안동 풍산읍 하리리 출생)

▷ 종택 ;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

▷ 제주 ; 종손 김주현, (차종손 김정기 1954년생)

▷ 제사 시간 ; 1990년까지는 기일 자시에 지냈으나

지금은 기일 저녁 8시에 지냄.

※ 주요 약력 ; 조선 전기 문신,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  이조 판서 추증.

무오사화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 안동으로 낙향, 길안면에

만휴정을 짓고 후학을 기르면서 청렴한 생활을 함.

 

■ 허백당 김양진 (1467 - 1535년) 불천위 제사

▷ 본관 ; 풍산 (안동)

▷ 종택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 1리 유경당

▷ 제주 ; 종손 ?

▷ 제사 시간 ; 기일 저녁 8시

※ 주요 약력 ;  경주 부윤, 전라도 관찰사, 충청도 관찰사,

황해도 관찰사, 공조 참판, 동부승지, 대사간, 홍문관 부제학,

 

2014. 5.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