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인)

언 마음 녹여 주는 댓글 시인 제페토

blueroad 2015. 6. 19. 08:56

언 마음 녹여주는
댓글 시인 제페토

목각인형 피노키오처럼
따스한 결이 살아있는 문장들

댓글 시인 제페토를 아시나요?

제페토는 2010년부터 다음 뉴스 댓글란에 시를 쓰고 있는 인터넷 시인입니다.

이 분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인터넷 세상이지만, 이런 글도 찾아볼 수 있기에

 우리는 계속 댓글을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름 모를 친구에게>

그놈의 동네는 가지 성성한 나무 하나 없었더냐
푹신한 잔디 한 평 깔려 있지 않았더냐
에라이 에라이
추석이 코 앞인데
눈 비비며 전 부치고 계실 어머니는 어쩌란 말이냐
하필 당신 나와 같은 나이더냐
전기줄에라도 매달렸어야지
없는 날개라도 냈어야지
누구는 이십층서도 살았다드마는
구미터면 살았어야지
어떻게든 살았어야지
발 밑 좀 살피지
뭐라도 붙잡지
귓볼 스쳐 날던 나비에라도 매달리지

이번 추석은 글렀다
웃으며 지나긴 글렀다
음복 하며 울게 생겼다

 

제페토님의 댓글

 

 

공복의 속쓰림에
밤새 지새웠을 너의 새벽이 눈에 선하다
깜박거리며 점멸하는 목숨을 느끼며
깡마른 손으로 썼을
가장 힘들었을 대사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너를 알았다면
한창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
뜨거운 쌀밥 나누었을텐데
끝내 너의 삶
해피엔딩은 아니었나보다
부디 에필로그는
시네마 천국에서
웃는 얼굴로
천천히 페이드 아웃 되기를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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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아시아경제

 

· 서울동물원 최고몸값 고릴라 '고리롱' 숨 거둬

고향 떠나온지 반백년
시멘트 독에 절단된 발가락
휘청이는 몸으로
사랑도 힘에 부치어
자식 하나 남김 없음이 서러운데
본전 생각에 박제라니
하지 말아라
그만하면 됐다
아프게 가죽 벗겨
목마르게 말리지 말아라
먼지 앉고 곰팡이 필
구경거리로 세워놓고
애도니, 넋이니
그거 말장난이다
사라 바트만처럼
사무치게 그리웠을
아프리카
흙으로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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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뉴시스 ·

 

90대 할머니, 키스 왜 안해줘 '총기 난사'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 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이리라 제페토님의 댓글

 

[ 아물지 않더라 ]

술만 자시면 눈 뒤집어진 아버지는
어머니 목에 조선낫 겨누다가
마른 솔가지 하얗게 타는
초저녁 아궁이에
신음하는 얼굴 밀쳐 넣었다
기분대로 부수고
아하니 노지는 못하리라는
태평가 부르다 잠들면,
뽑혀나간 머리카락
절룩이며 주워 쥔 어머니는
품으로 파고 든 네 남매에게
차라리 죽어버리자 했었다
세월 지나도 고약한 것은
볕 좋은 주말 등산로 오를 때에
오랜만의 별미로 비빔국수 고명 얹을 때에
뜬금 없이 떠오른다는 것인데
묘목에 난 작은 생채기가
훗날 크고 선명한 흉터로 자라듯
술만 마시면 눈 뒤집어져서는
엄마 청춘 가엾어서 어쩌나
진창에 뒹굴며 울게 만드는
그런 거더라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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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한국일보 ·

 

보이저 1호의 끝없는 항해 태양권 바깥 '미지의 세계로'

 

그대 멀어질수록
우주는 커졌고
인류는 한없이 작아졌다
돌아올 수 없는 매정한 임무를
군말 없이 해냈다지만
머지않아 전원은 꺼지겠지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울음 섞인 소감이라도
한마디 남겨다오
떠나 보니
너희 나고 사는 모든것이
기적이었더라고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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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마이데일리 ·

 

'맹견 안내견' 화제…장님 개 눈 되어줘 감동 '사람보다 낫다'

 

보이지 않아도 내 다 안다
툭 하고 목줄 당기면
삼나무 숲에 가자 하는 것임을

보이지 않아도 내 다 안다
행여 목이 조이지 않을까
때때로 돌아보는 선한 눈을

저무는 하늘을 볼 수 없는 나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래도 내 다 안다
툭 하고 목줄 당기는 그때가
우리 아쉽게 돌아가야 할 때임을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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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연합뉴스 ·

 

겨울바다
봄이 지나고
대여섯 달 뒤
항암치료가 끝나면
난생 처음 부자지간에
망둥이 낚시를 즐겼을 텐데,
까다로운 당신 성격에
즐거웠을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 끝이 났습니다
끝나버렸습니다

여쭙건대
지키지 못할 약속임을
그때 이미 아셨습니까

이제 바다는
녹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영영 얼어
만조의 선창가에서 홀로
낚싯대 드리우는 늙은 사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행여 바다 다시 녹아
망둥이며 숭어를 맨손으로 건져 올리는
꿈 같은 날이 오더라고
다 끝난 걸요, 아버지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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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한겨레

 

· 도축 직전의 소·돼지 “제발 기절하게 해주세요”

 

칼에 베이고도
더는 딱지 지지 않는
생살 몇 덩이가
치지직
불판 위에서 탔다

이모님과 유통업자는
이문을 남겼고
도축업자와 옛 주인도
이문을 남겼다

우리 또한
삶의 노고에 대한
얼마간의 보상을
(엉뚱하게도)
너의 살점에 청구하기로 했다

회식의 취지대로
웃고 떠들며
단합과 영양을 보충하다가
문득 너도
도축장으로 실려가던 그저께
고속도로 트럭 밖의
생경한 외계 풍경을
기왕에 소풍 삼아 즐겼기를 바랐으나
사실 우리는
그런 식의 소풍을 떠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만
우리는 돈을 치렀고
이문을 남겼고
오롯이 너만 당했다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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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노컷뉴스 ·

 

"명절이 지나고 다니는 학원 수가 더 늘었어요"

 

우리 반 십육 번
박정호가 죽었네
영어학원 건너가려다
뺑소니를 당했네

레커차 달려오고
경찰차 달려오고
사이렌 시끄러워도
그 아이 텅 빈 눈은
먼 하늘만 보았네

박정호가 죽었어요
훌쩍대는 전화에
울 엄마는 그 아이
몇 등이냐 물었네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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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뉴시스

 

· '눈이 오네'

 

내린다는 말보다
온다는 말이 좋다

너도 눈처럼
마냥 오기만 하여라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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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국민일보

 

· 한여름 숙면 방해하는 주범은 '참매미'

 

세상도 맴맴 돌아
제자리로 와버렸다
진화한 것은 욕망뿐

십칠 년 매미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매미, 너도 알 필요가 있다

아직도 뭍을 밟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제페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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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연합뉴스 ·

 

억새와 연인

 

모여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목받는다
한 데 모여 흔들리자
모여서
굳이 풍향과 풍속을 설명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오한이 날 만큼
정직하게 흔들리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
부러질 듯 허리가 휘어도
나는 너의 뒤에서
너는 나의 뒤에서
밀리지 않는 배경이다

태양은 서둘러 뒤편에 내려앉아라
네가 은빛 머리칼을 금빛으로 물들일 때
바람이 굵은 결로 불어온다 했다
준비를 마친 청년이
긴 머리 애인을 향해 셋을 세고 나면
우리의 씨앗을 떠나보낼 것이다

약속해다오
완벽한 구도 속을 날아가, 머얼리 번지되
아주 흩어지진 않기로

 

제페토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