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인)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사랑

blueroad 2019. 9. 3. 22:56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의 사랑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에 대한 청마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울림 이였기에 퍽이나 고통스러운 사랑이었다

미모와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21살에 출가해서 딸 하나를 낳고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아가던 정운 이영도는

해방되던 그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하면서

그 사람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 되였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요조숙녀의 자태에

청마의 첫눈에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제하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
서른 여덟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의 청상 과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    

 

그러기를 3,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하였다.

처자가 있는 청마로써는

그녀와의 사랑은 애초부터 이루어 질 수 없는 숙명 일수 밖에 없었다.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인연 이기에 청마의 가슴 속에 자리한

연정의 조각은 가슴 저미는 쓰라림으로 남아 있곤 하였다

 

 

 

 

  

 

 

 

 

 

파도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

"뭍같이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이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 않던 정운의 마음이 어느 날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 .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현실의 사랑을

한 단계 초월하여' 받는 이 보다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그의 사랑은 외로움이었다.

아마 한계가 있는 사랑이기에 오히려 감동을 더욱 진하게 안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틋한 그리움이 동백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봄날.

통영 여행은 마흔을 바라보는 청마 유치환이 9살 연하의 정운(여류 시조시인 이영도의 호)에게

연시 ‘행복’을 써서 보냈던 청마거리 통영우체국에서 시작된다.

청마가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길 건너 정운의 이층 집를 바라보며 편지를 쓸 때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예감한 듯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졌으리라.

이미 결혼한 청마와 홀로 된 정운.

시인은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통영여중 교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정교사인 정운을 마주치지만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연서로 그리움을 달랜다.

60살이 되던 1967년 교통사고로 타계하기까지 20년 동안 시인이 띄운 연서는

모두 5000여통. 사모의 정을 담은 편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낸 셈이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 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
落命)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 52 62일 당신의 마(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
- 청마 유치환

 

진정 마음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너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는 유리문 밖으로
연보랏빛 갯바람이 할 일 없이 지나가고
노상 파아란 하늘만이 열려 있는데
                                   
- 우편국에서(청마 유치환)

 


"
이렇게 고운 보배를 나는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지막 내가 죽는 날은 이 보배를 밝혀 남기리라

-유치환-

 

 

정향!

당신 그린 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밀려오고 끝이 없습니다.

깊은 사랑이란 이렇게 슬프고도 어진 선물입니까?

당신, 나의 당신!

그리울 때는 어쩌면 죽을 상히 못 견디겠습니다만

갈 앉으면 외려 더욱 반갑고 향그럽습니다.

 

정향! 당신 만을 끝내 높게 맑게 외롭게 있어 주십시오.

귀한 정향!

당신의 그 높고 외롭고 정함이 이내 나를 빛나게 합니다.

이미 당신을 부르시는 종소리 울려 난 다음

바깥에서는 빗소리 들리고 창이 밝아 옵니다.

 

궂은 날씨 같은 세상에서 내 비록 남루하고 부끄러운 허울일지언정

내 앞에는 빛나는 당신이 언제나 자리하고 눈 떠 계시니

어찌 끝내도록 내사 슬프겠습니까? 스스로 알 듯도 합니다.

 

어제 황혼 무렵,

산에서 내려오며 꺾어 온 한 송이 항가새꽃.

당신의 붉은 정성, 내게로 향한 당신의 붉은 정성인양

나의 책상 머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정 참된 사랑을 가졌으므로 나는 다시 어질게 느껴집니다.

-세월이 갑니다. 그리운 세월이 갑니다.

바람이 호면을 가늘은 살을 끼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세월은

우리의 목숨 위를 스치고 갑니다.

 

정향!

그렇지 않습니까?

나의 귀한 정향! 안녕!

 1952 6 26일 청마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사랑한 정향!

정말 고운 달밤이었습니다.

같이 어디까지나 지향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어찌하여 나는 와 버려야 하는 겝니까?

그러나 어저께는 내게 과분한 날이었군요.

세 차례나 당신을 볼 수있었으니 --

 

일어나니 세시 반,

달은 넘어가고 없고 미륵산 조용한 그림자 위에

또렷한 별 한 개가 보입니다.

 저 별이 당신이 아닙니까?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지켜 비쳐 주고만 있을 당신의 애정,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한 정향!

오늘 내 안에서 무엇이 귀한들 당신만 하리까.

진정 당신의 고운 눈을 볼 때마다

와락 껴안고 싶은 무한히 고운 안타까움입니다.

무엄합니까?

 

나의 귀한 정향,

아아, 어느 하늘, 어느 세상에서 반드시 내가 당신의 반려가 되고

당신이 나의 반려가 될 날이 있을 것을 우리는 기약하여 좋겠습니까?

 

그리하여 그날에사 하루에 한시고 떠남 없이

당신 곁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내가 생각하고, 당신이 보는 것을 내가 볼 수 있겠습니까?

 

나의 애달픈이여.

이렇게 곱고도 마음 아프게 하는 이여.

헛된 세월은 헛되게 흘러 갑니다.

아무 짝에도 보람 없는 세월이 흘러 갑니다.

이 헛된 흐름 가운데서

어디서 나를 부르는 나의 소리가 자꾸만 들려 옵니다.

들려 옵니다.

1952 7 1 - 당신의 청마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냐
                    
- 청마 유치환

 

 

아무튼 청마는 생전에 5000여 통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내면서

장년기의 제2청춘을 아름답게 역어 나갔다

이영도의 시를 보면 그녀도 매몰차게 청마를 거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유치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을 거둘 때까지

숱한 세월의 격랑 속에서 안타까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긴 세월 동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청마의 끈질긴 구애에 마음을 움직인 정향이지만,

어디까지 마음으로만 사랑해야 했던 그녀도

이영도는 유치환을 잃은 마음을 시로 남겼다.

 1954년 청저집에

무제로 청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무제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정운 이영도 청저집 중에서-

 

  

()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모 란 - 이영도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흔든다.

 

 

황혼에 서서 - 이영도

()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서 있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 정운 이영도

 

위 시를 읊을 때마다 그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눈물겨운 것은

시인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20여 년에 걸친 플라토닉 사랑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았고

사랑은 미완성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애타는 심정을 시로 서로 화답하고

당신이 주신 시를 수 놓은 그 병풍 아래 누워야 잠이 들고

하루에 한 장씩의 편지를 주고 받아야만 진정이 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참으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들판에 홀로 서서 배달부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거나,

5~6시간 버스를 타고 부산에 와서

단지 수십분만 얼굴을 마주보고 돌아갔던 적도 있는

그런 순진한 청마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스무해 동안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부산여상 교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1967 2 13일 저녁 예총 일로 문인들과 어울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시내버스에 치여 59세의 나이에 붓을 영영 놓게 된다

청마가 보낸 편지 중에 6·25전쟁 이전 것은 불타 버렸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그 당시 <주간한국>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신출내기 출판사 편집장이던 이근배 시인에게 넘기고

청마의 편지 중 200여통을 추려서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출간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청마는 1908년 거제에서 출생해서 통영에서 자랐다

23세인 1931년 문예 월간에 '정적'시를 발표 하면서 문단에 등단했고 

그는 문학 청년들과 어울려 술 마시기에 골몰하자

그의 아내는 신학 공부를 권유 했으나 거절하고 시작에만 전념했다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이주해서 사진관을 경영하다가 

다시 부산에서 화신연쇄점에 근무하기도 했으나

통영 협성상업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일제의 검속 대상에 몰리면서 잠시 만주로 나가 형의 농장일을 돕다가 

1945 37세 되던해 통영으로 돌아와서 부인은 유치원을 경영하고

윤이상.김춘수와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통영여자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청마는 한국시인협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통영 남망공원.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공원에 시비가 있으며

통영 정양동에 청마 문학관이 있다 

 

이영도(李永道, 1916 10 22 ~ 1976 3 5)

이영도는 1916 경북 청도에서 군수를 지낸 부유한 가정에서 개인교사를 두고

공부를 했다 1945년 시월간지 죽순에 '제야'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오빠 호우도 시조시인이며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에 생가가 있으며 

그녀는 한국 여류문인협회와 한국 시조작가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이영도는 남편의 죽음 뒤에 정신적 기둥이였던 청마의 돌연사로 큰 좌절을 겪은 뒤

정운은 청마가 세상을 세상을 떠나자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 살았고 

1976 뇌출혈로 삶을 마감 하는데 

이상하게도 청마가 이생에서 누린 나이와 똑 같이 59세이다.   

엄연한 불륜임에도 불구하고

이영도를 향한 사랑'을 거두어 달라는 말 한마디 못한 순정이 있다.

청마의 부인이다.

"그토록 목숨 같은 사랑인데 어찌하겠어요"

 

 

 

 

 

 

깃발 ? 유치환의 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永遠(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純情(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이념)()대 끝에

哀愁(애수)白鷺(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바 위 -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다.
아예 애련(
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
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나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
窈窕)하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
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
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
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바다 - 유치환 

 이것뿐이로다

억만 년 가도

종시 내 가슴 이것뿐이로다

온갖을 내던지고

내 여기에 펼치고 나 누웠노니

오라 어서 너 오라

밤낮으로 설레어 스스로도 가눌 길 없는

이 설은 몸부림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오직 높았다 낮았다 눌러 덮은

태초 생겨날 적 그대로의 한 장 비정(非情)의 하늘 아래

구할 길 없는 절망과 회오와 슬픔과 노염에

찧고 딩굴어 부르짖어 못내 사는 나

때로는 스스로 달래어

무한한 온유(溫柔)의 기름 되어 창망히 잦아 누운 나

 

아아 내 안엔

낮과 밤이 으르대고 함께 사노라

오묘한 오묘한 사랑도 있노라

삽시에 하늘을 무찌르는 죽음의 포효도 있노라

 

아아 어느 아슬한 하늘 아랜

만 년을 다물은 채 움찍 않고

그대로 우주 되어 우주를 우러러 선 산악이 있다거니

오라 어서 너 오라

어서 와 그 산악처럼 날 달래어 일깨우라

아아 너 오기 전엔

나는 영광한 광란의 불사신

여기 내 가슴 있을 뿐이로다


 

 출처: 암 환자의 건강한 삶(cafe.daum/goodlifewithcan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