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문지인 <월간 시> 7월호에 흥미로운 시 33편이 발표됐습니다. 정치인 33명에 대한 '인물 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해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유명 정치인들이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시(詩)의 세계'로 소환한 현실 정치 특정 인물을 다룬 '인물 시'는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그러나 지난 2월 법원이 과거 성추행 혐의를 사실로 인정한 고은 시인의 '만인보'가 대표적입니다. 4,001편의 이 연작시에 대해 고은 시인은 "인간 군상의 부침과 영욕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만인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성난 독사",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교의 수제자", 장준하 선생은 "죽음으로 싸움을 이끌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이오장 시인의 '인물 시'는 다릅니다. 올해 67살로 문 대통령과 동년배인 시인은 현실 정치인을 시의 세계로 소환했습니다. 시는 짧습니다. 웬만하면 석 줄을 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유를 담은 단 몇 문장만으로 정치, 정치인의 삶을 꿰뚫습니다. 거침없는 인물 비평, 따끔한 쓴소리로 읽힙니다. 시인이 가졌을 법한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는 엿보이지 않습니다. 여야나 좌파니 우파니 하는 현실 정치의 진영 논리보다 '정치, 정치인이 왜 존재하는지', 이 근본적 물음에 주목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통령이 섬기고 받들어야 하는 건 '국민'뿐 이오장 시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전·현직 대통령을 다룬 시입니다. 시인은 '국정농단 사태'로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주'로 칭했습니다. 그러면서 홀로 지내는 그가 섬겨야 하는 건 '국민'이라고 강조합니다. 시인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안개강 하나 건너와 옷깃 터는가"라는 구절을 보며 짙은 안개가 낀 강을 떠올립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촛불집회, 그리고 이어진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과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의 승리. 이를 두고 시인은 문 대통령이 안개강을 하나 건너왔다고 본 겁니다. 그러나 "옷깃 터는가", "돌고 돌아 제자리"라는 표현 앞에 서면 문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대통령이 받들어야 하는 건 '국민'의 목소리라는 뜻일 테지요. 여야 대표·원내대표 시에 담긴 '촌철살인' 여야를 대표하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해 시인은 어떤 '촌철살인'을 날렸을까요? 먼저 민주당 이해찬 대표에 대해선 "손 내질러 이룬 명성"이라며 학생 운동, 민주화 운동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라면서도, "말로 (명성) 잃지 말라", "눈물 흘려 진실을 보여야지."라며 겸손함과 진정성 있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이인영 원내대표 시는 '원칙론자'로 불리는 이 원내대표를 향해 "아궁이 식으면 끝장"이라며 야당과의 협상에 중심을 잘 잡고 임할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시에선 "가마꾼 없는 가마는 전시품"이라고 합니다. '친박'을 등에 업고 당 대표를 거머쥐었지만, 여전한 당내 계파 갈등, 녹록지 않은 보수 통합, 정체된 지지율 등의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에겐 더 혹독합니다. "손에 들 바늘 입에 물고/ 찢긴 군중의 가슴 바느질하는 여전사"로 칭합니다. 거친 말보다는 국민 마음을 더 살펴 달라는 당부일 겁니다. 조국 "진흙밭으로…", 양정철 "나서지 말고…" 요즘 계속해서 법무부 장관 내정설이 나오고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조 수석은 이미 지난 주말 정치권을 SNS로 술렁이게 했습니다. 몇몇 여당 의원들에게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해명을 정리해 보낸 건데, 야당은 '김칫국을 너무 일찍 마셨다'고 비판했습니다. 시인은 조 수석 시에서 '진흙밭으로 가라'고 일침을 놨습니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에 대해선 "기둥이 무대 위에 오르면 /무대가 무너져 관중이 놀라지."라고 썼습니다. 양 원장은 정치권에 복귀한 뒤 서훈 국정원장과의 회동, 또 지자체와의 정책협약 체결 등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양 원장은 선거와 무관하다고 설명했지만, 야당은 여전히 의혹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인의 "나서지 말고 기둥으로 지켜라"는 구절은 이런 양 원장의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이 시인은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 완성한 시는 양정철 씨에 대한 시"라고 했습니다. 이 시인은 "문재인 정부의 공로자라던 양정철 씨가 갑자기 나타나서 정치권의 불을 지르는 걸 보고 정치인 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이낙연·유승민 시에서도 '쓴소리'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들에 대한 시들도 여러 편입니다. 기자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해선 "부릅뜬 눈에 큰 귀 열고 / 펜으로 그려낸 스피커 시절로 돌아가라"며 '첫 마음'을 잃지 말라고 쓴소리를 합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향해서도 "회초리 한 번 맞아보지 않고 매를 들겠는가"라며 "때리려거든 언제든지 맞아보라"고 일갈합니다. 다른 정치인들의 시들은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요? 몇 편을 있는 그대로 옮겨봅니다. 임종석 : 정의의 투사가 상대를 잃으면 / 욕심이 넘치는 것 / 권력의 정의는 싸움꾼이 세우는 게 아니고 / 국민 여망의 집합꽃이다 박원순 : 가난은 죄가 아니라도 자랑하는 건 철면피 / 얼굴 들고 다니려면 집부터 고쳐야지 / 부잣집 창고에서 인심 난다는 걸 잊지 마라 유시민 : 굴뚝 없는 연기 그만 피워라 / 생장작 떨어지면 숯이 남는 것 / 아무리 피워도 연기는 안개가 되지 않는다. 홍준표 : 도끼로 바위에 새긴 글 깊이가 얼마인가 / 망치 들었다면 정을 잡아야지 / 세밀하고 깊은 글이 민주의 정의다 홍문종 : 받들어 피운 꽃이 조화라고 확인됐는가 / 떠난 추종자가 배반자라고 말하는가 / 정치적 해결을 봤다 해도 인간적인 절차는 누가 책임지는가 정동영 : 꽃구름 탔더니 먹구름 / 나룻배 탔더니 조각배 / 이제는 작은집 마당가에 접시꽃 심상정 : 호수가 클수록 쉼터가 있어야 한다 / 깊이를 모른 채 날아가는 새를 탓하는가. / 넓히려 하지 말고 그 자리를 지켜라. 이오장 시인 "초심으로 돌아가라" 이들 시를 쓴 이오장 시인은 "특정 정치인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들 시는 사실 모든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정치인이 정치를 시작할 땐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고 하는데, 정치를 거듭할수록 그 마음을 잃는다"면서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또 "나라는 어지러운데, 정치인들이 욕심을 부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걸 꼬집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시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들의 자유입니다. 그게 시의 묘미이니까요. 하지만 혹시나 해서 이 시인에게 '항의한 정치인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까진 없다"고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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