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전북 임실의 옥정호(玉井湖)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는 선계의 풍경이다. 일교차가 큰 새벽녘, 호수를 감싼 산줄기와 수면을 가득 채운 물안개는 몽환적이다. 산줄기를 타고 하산한 구름과 옥정호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만나 운무를 만든다. 호수 면으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사우나 수증기처럼 자욱하다. 일명‘붕어섬’이라고 불리는 호수 속의 섬 외앗날(외안날)을 가운데 두고 호수의 물길과 국사봉, 오봉산, 성옥산, 묵방산 등 주변 산자락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국사봉 전망대에 올라서서 보면 어디서 밀려왔는지 운무가 호수와 산허리 골골마다 짙게 깔려 눈과 마음을 빼앗긴다. 운무에 갇혔던 붕어섬이 언뜻언뜻 모습을 보여주다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해가 중천에 뜨면 물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발아래로 화려한 지느러미를 펼치고 유유자적 헤엄치는 듯한 붕어섬이 생생한 모습을 드러낸다. 옥정호의 옥빛 속살도 제대로 보이고, 호수를 둘러싼 물안개길도 한눈에 들어온다. 물안개길을 걷기 전이나 후에 옥정호 운무와 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국사봉 전망대를 들르는 것이 필수다. 옥정호 물안개길은 임실군 운암면 마암리에서 용운리 용운마을까지 13㎞ 흙길로, 총 3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1구간은 마암리 승강장에서 육모정까지(1.6㎞), 2구간은 육모정에서 못지골까지(2.45㎞), 3구간은 못지골에서 용운리 승강장까지(8.95㎞)다. 모두 4시간가량 걸린다. 강명자 문화관광해설사는 “물안개길은 수변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어 사색하기 좋은 길”이라며 “녹음방초의 여름도 좋지만, 단풍 든 가을과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 강변 풍경은 놓치기 아까운 그림을 연출한다”고 말한다. ◇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길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옥정호 물안개길은 그야말로 때 묻지 않은 오솔길이다. 구불구불 호숫가를 따라 이어져 있는 물안개길은 험하지 않고, 이정표 58개가 갈림길마다 잘 설치돼 있어 초행자도 쉽게 세상 시름을 다 잊고 물 구경에 빠져들 수 있다. 옥정호를 에워싼 산자락에는 갈참나무, 떡갈나무, 단풍나무 등이 울창해서 숲은 더욱더 풍성함을 보여준다. 출발지는 마암리 둔기 승강장이다. 50여m 도로를 걷다가 강변길로 접어들면 인적마저 드물어지는 시골 옛길이 이어진다. 호숫가에는 가마솥 불볕더위에 나룻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 있고, 나래산과 옥정호반을 가로지르는 운암대교가 운치를 더한다. 예전에는 이곳에 배가 드나들고 물길이 한 바퀴 돌며 머무는 곳으로 나루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둔기마을에는 조선 숙종 때 효자 운암 이흥발이 중병에 걸린 홀어머니를 위해 강에서 낚시하는데 하루는 물고기 대신 산삼을 낚아 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는 지점에서는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너에게 가려고”라는 안도현의 시 ‘강’을 읽으면서 호수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오일장을 가던 옛길로 접어들면 피안의 세계다. 가파른 길에 계단을 오르면 운암면 마암리의 음지센바위와 양지센바위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적신다. 강물 줄기와 오솔길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숲 그늘을 걷다 보면 제1구간 종점인 육모정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참새들의 방앗간 길 카페’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전부리를 즐길 수 있다. 다시 용운마을 쪽으로 걸어가면 처음 트였던 호수보다는 아늑한 풍경을 맞게 된다. 약간 평탄한 길을 가다 보면 수몰로 인해 고향을 떠나 버린 주인을 기다리는 대나무 숲이 울울창창하다.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있는 옥정호는 1965년 섬진강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로 전북에서 가장 큰 호수다. 이 때문에 주변 5개 면의 수몰지역 주민들은 당시 부안 계화도 간척지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 이주해야 했다. 강물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뿐만 아니라 계화도 간척지까지 흘러간다. 섬진강을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고 물으면 사람들은 “어머니 품 같다”고도 하는데, 옥정호에는 수몰민의 아픔과 그것을 묻어버린 애잔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길은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 숲을 지나 다소 힘든 오르막길을 지나면 평탄한 길과 마주한다.“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걷는다. 10분, 20분 걷다 보니 외딴집 한 채가 있는 못지골에 닿는다. 제2구간 종점이라는 41번 이정표에는 ‘용운리 7.9㎞, 마암리 3.3㎞’라고 적혀 있다. 옥정호 순환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3구간은 울창한 숲과 넓은 호수가 조화를 이뤄 경치가 빼어나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 덕분에 뙤약볕 아래에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힘이 덜 드는 느낌이다. 소나무 숲 사이를 걷노라면 용운마을이다. 마을의 형국이 내(乃)자형으로 뒷산이 말의 형국이라 하여 내마촌, 마을 앞에 부처와 같은 바위가 있었다 하여 불암동, 용곡이 있다 하여 용동이라고 불리는 3개 마을이 있었는데 용곡의‘용’자와 운암의 ‘운’자를 따서 ‘용운’이라 부른다. 용운리 내마 승강장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가면 호수 안에 떠 있는 붕어섬을 만난다. 외앗날 맨 위 붕어의 머리 부분에 뾰족바위가 눈길을 끈다. 옛날에는 이어져 있었는데 배가 다닐 수 없어 바위 일부를 폭파해 길을 텄다고 한다. 옥정호는 참 예쁜 호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붕어섬으로 건너가고 싶어진다. 강명자 문화관광해설사는“옛 주민들은 외따로 떨어진 산이라며 ‘외앗날’이라고 불렀는데 강줄기가 바깥 날과 안 날을 빙 돌아 S 자를 그리며 흘러가기 때문”이라며 “날은 산등성이를 말하고, 더 오래전에는‘섬까끔’이라고 불렸다”고 말한다. ‘까끔’은 전라도 방언으로 ‘야산’이다. 용운마을을 빠져나와 순환도로 쪽으로 올라가면 물안개길 1번 이정표가 옥정호 순환도로 옆에 서 있다. 여기서 입석리로 조금만 가면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이다. 이곳에서 나무계단과 등산로를 15분 정도 올라가면 국사봉 중턱의 전망대에 닿는다. 사진 찍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노령산맥의 첩첩한 산줄기에 둘러싸인 옥정호 풍광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지나온 길을 되짚어 바라보면 구불구불한 여정이 한 올 한 올 되살아난다.
◇ 숲, 계곡, 호반이 공존하는 세심 자연휴양림 임실군 삼계면에 우뚝 솟은 해발 604m의 원통산 자락에 있는 세심(洗心) 자연휴양림은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돼 몸도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이름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자연의 정취와 어우러져 상쾌한 휴양이 가능한 곳이다. 천연림과 기암괴석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원통산의 유래는 김해 양씨가 산세가 좋다는 말을 듣고, 이곳까지 와서 조상을 모실 명당자리를 찾았으나 헛수고를 하고,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에서 명당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 뒤로부터 먼 곳에서 명당자리를 찾아 왔다가 헛걸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돌아갔다 해서 멀 원(遠), 아파할 통(痛)을 써서 원통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원통산 중턱에는 30년생 내외의 리기다소나무 조림지(약 50㏊)를 비롯해 천연 침엽수와 활엽수 군락이 천혜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자연휴양림 맨 위쪽에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죽계저수지가 있다.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 산막1단지와 휴양관까지 계곡을 따라 걷는 길에서는 시원한 물소리와 숲의 푸른 기운이 귀와 눈은 물론 정신까지 맑게 한다. 산막과 휴양관 주변에는 울창한 송림이 둘러쳐 있어 낮에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림욕을 즐길 수 있고, 밤에는 통나무집 창을 통해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은 작고 아담하다. 산막과 휴양관 등 16실의 숙박시설은 점점이 박혀 있다. 계곡 옆에 있는 산막 1단지 객실에는 개나리, 철쭉,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주변의 나무 이름이 붙어 있다. 광장과 주차장을 갖춘 산막 2단지의 소나무와 참나무 객실은 원룸인 다른 객실과 달리 방 1개와 거실 겸 주방을 갖춘 5인실이다. 죽계댐 아래 위치한 휴양관에는 은행나무와 상수리 등 2개의 방이 있고, 주변에 정자, 공동샤워장, 공동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산행 코스는 자연휴양림을 출발해 숲 속의 집 2단지, 지초봉 갈림길, 원통산 정상, 학정마을을 거쳐 자연휴양림으로 돌아오는 길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원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