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 상태 유지하며 만든 특별한 커피를 판다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업체 3곳과 소규모 커피전문점 탐방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김치도, 쌀밥도 아니다. 답은 커피다.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성인 3805명을 대상으로 음식 항목별 섭취 빈도를 조사했더니 커피가 주 12.3회로 단일음식 가운데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성인 한 사람이 하루 평균 2잔꼴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커피전문점이다.
그러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업체들이 '스페셜티 커피'라는 새로운 브랜드 혹은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다. 스페셜티 커피란, 생두의 재배부터 로스팅, 브루잉 등 모든 순간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서 만든 특별한 커피를 뜻한다. SPC그룹은 지난 9월 중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인 '커피앳웍스'(coffee@works) 매장을 열어, 세계 7% 최상급 원두만 사용하는 커피를 팔겠다고 선언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고객이 최상급 원두 종류를 직접 고르면 현장에서 직접 갈아서 내려주는 '리저브 커피'를 전국 7개 매장에서 지난 3월부터 판매하고 있다. 할리스·아티제 등도 일부 매장에서 스페셜티 커피 메뉴를 내놨다. 과포화 상태인 커피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달달한 다방 커피에서 아메리카노로, 이제는 다양한 맛과 향을 품은 '특별한 커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울 광화문 커피앳웍스 매장의 안내문은 기사 마감날이면 하루 서너 잔씩 커피를 물처럼 들이켜는 기자를 움츠러들게 했다. 쯧, 나는 커피를 모르는 게로구나. 그래서 모셨다. 지난 5월 맛집 평가서인 '블루리본'의 애식가 바이블 시리즈 <스페셜티 커피 인 서울>을 펴낸 심재범 아시아나항공 바리스타팀 그룹장. 그는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주는 큐그레이더(커피 생두를 감별해 등급을 매기는 전문가) 자격증을 갖고 있다. '베이루트'라는 필명으로 월간 <객석>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써온 커피 칼럼니스트 조원진씨도 함께했다. 지난 9월27일 오후, 스타벅스 소공동점을 시작으로 커피앳웍스 광화문점, 폴바셋 광화문점, 서울지방경찰청 인근에 위치한 국내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인 '나무사이로' 등 4곳을 옮겨다니며 9종류의 커피(자세한 구매 목록은 표 참조)를 비교해봤다. 매장 직원들에게 커피 생두나 로스팅에 관한 질문을 했지만 취재 중이라는 사실은 숨겼다. 스타벅스가 아예 제조사를 인수했다는 클로버라는 커피 추출기로 즉석에서 커피를 내려줬다. (한 모금 마신 뒤) 스타벅스는 기본적으로 강배전(강하게 오래 볶은 것) 원두를 쓴다. 그럴수록 커피맛이 써져서 우유, 시럽 등을 넣게 되니까 단가가 올라간다. 스페셜티 커피가 유행하기 전에는 강배전을 선택해서 커피의 단점을 많이 숨길 수 있었다. 요즘은 약하게 로스팅해서 차처럼 마신다. 약하게 볶으면 신맛과 단맛이 살아난다. 고기에 비유하자면 맛있는 생고기는 '레어 스테이크'로 먹잖나. 스타벅스에서 파는 원두는 보통 유효기간이 1년인데 리저브 커피는 6개월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어떤 원두도 로스팅한 뒤 한 달을 못 버틴다. 다만 한 달이 지나면 최고의 맛이 없어진다. 공기에 노출돼 산화되기 때문이다. (말라위를 한 모금 마신 뒤) 말라위는 좀더 상태가 좋은 것 같다. 참고로 (생두의 특성을 분별하고 평가하는) 커핑 작업에선 산미가 중요하다. 일종의 신맛인데, 한국 사람이 느끼는 신맛이 '시큼'이라면, 이건 '상큼'에 가깝다. 산미가 살아 있으면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진 느낌이 난다. 그런데 산화가 되면 목에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고 걸리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스타벅스가 대기업이다보니 페루 등 보통 스페셜티 커피숍에선 맛볼 수 없는 걸 가져온다. 자본력이 있기 때문에 열악한 커피 산지의 유통 구조를 언제든지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웃음) 미국법상 10%만 섞여도 코나라고 파니까 100%라고 강조한 거다. 코나는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데, 하와이 현지가 아니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어렵다. 처음에 마시면 설탕을 한 숟갈 넣은 것처럼 달다. 이건 파인애플향을 강조한 것 같다. 난 스타벅스의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항상 가본다. 커피의 대중적인 문화를 끌어간다는 측면에서, 스타벅스는 뒤처지지 않는다. 가격은 커피 종류나 추출 방식에 상관없이 6천원으로 동일하다. 2~3년 전부터 한국에서 손꼽히는 커피 전문 인력을 영입해서 연구·개발(R&D)과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한 걸로 안다. 다만 이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콜롬비아를 마신 뒤) 100점 만점에 82점 정도 될 것 같다. 좋은 커피는 달고 고소하고 편안하다. 다 마신 뒤 빈 잔에 향이 남는다. 스타벅스 리저브가 전통적인 진한 커피라면, 여긴 전체적으로 스페셜티 커피에 가까운 다양한 맛과 향기가 있다. 직원들이 신경 써서 직접 손으로 드립해야 하니 맛이 달라진다. 매장에서 충분한 인원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드립 방식을 끼워넣는 건 생각해봐야 한다. (과테말라를 마신 뒤) 밀크초콜릿처럼 부드럽다. 여기 커피는 전반적으로 튀는 느낌이 없다. 커피 애호가들이 정말 완전히 고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스페셜티 커피의 기준을 살짝 넘는 느낌? 스타벅스가 스페셜티 커피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문턱을 낮춰줬다면, 여긴 소비자한테 취향의 다양성이라는 아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셈이다. (브라질을 마시더니) 피넛버터 느낌이 나고 편안하게 향미가 잘 살아 있다. 지금까지 마셨던 커피 중에 가장 좋다. 스타벅스가 물 500㎖에 원두 50g을 넣는다면 여긴 그 원두 양의 60%만 쓴다. 그래서 커피가 연하다. 향기가 좋은 커피일 땐 연한 커피가 맛있고, 향기가 없으면 맹탕이 되기 십상이다. 여긴 국내에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쓰는 게 스타벅스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로 보면 폴바셋은 모든 커피에서 우유와의 궁합을 중시하기 때문에 좋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는 우유랑 섞이면 길을 잃어버린다. 폴바셋은 스페셜티 커피라는 개념이 국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매장을 열었다. '월드바리스타 챔피언' 폴바셋이 만든 커피전문점이라는 점 때문에, 맛의 차별화 때문에 소비자가 열광했다. 흐리멍덩한 아메리카노만 마시다 4배 이상 진하게 느껴지는 커피를 마시니까 사람들이 맛있다는 느낌을 받은 거다. 커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때쯤 스페셜티 커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좋은 바리스타도 많이 영입해갔다. 이들이 맛을 평균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브루잉(커피 추출 방식) 측면에선 스타벅스와 커피앳웍스의 중간 정도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려던 할리스 대신 심재범 그룹장이 추천한 '나무사이로'를 찾았다. 게이샤는 파나마 에스메랄다의 한 농장에서 발견된 커피 품종이다. 와인의 샤토처럼 유명하다. 자몽향이 깔끔한 뒷맛으로 입을 감싼다. 오 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마셨던 게이샤 커피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였다. 젤리처럼 생긴 커피가 에스프레소 잔에 반쯤 차 있는데, 내가 아는 모든 향기가 그 안에 응축돼 있었다. 커피가 나를 위로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런 순간이 하나씩 있다. 향기를 맡았던 사람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가듯, 그 커피를 다시 만나는 순간 위로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는 향기라는 측면에서 각인효과가 크다. 평소 나는 커피를 하루에 한두 잔만 마신다. 커피는 카페인이 아니라 향기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기본적으로 커피 시장을 움직이는 건 카페인 중독이다. 피곤한데 커피 한 잔이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서. 강렬하게 달고 쓰고. 사회 전체적인 피로도가 높기 때문에 자극적인 맛이 필요한 거다. 그러다보니 작은 스페셜티 커피 매장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다. 스페셜티 커피 매장들은 윤리적 차원에서라도 생두 공급업자를 통해 직수입할 때 좋은 커피를 더 비싸게 가져오곤 한다. 비싼 커피를 위화감 없이 마신다는 거. 여기서 파는 가장 비싼 커피가 2만원이다. 대신 과거 드립 커피가 유행하던 때를 돌이켜봐도 사람들의 혀가 이런 맛에 익숙해지고, 스페셜티 커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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