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계절,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에는 황금빛 들판 벗 삼아 전국에 먹을거리도 넘쳐난다. 제철 산물들로 차려낸 가을 밥상은 여름내 지쳤던 입맛뿐 아니라 불현듯 '살 맛'까지 돋게 하는 법. 때로는 몸을 보하고 때로는 심심한 입맛 살리는 별미 찾아 색다른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가을 단풍에 견줄 칠보화반 색색의 맛 예로부터 양반이 많고 물산이 풍부하던 진주는 먹을거리도 풍요로웠다. 게다가 풍류를 아는 고장답게 교방문화가 발달해 음식문화의 꽃을 피우기도 했다. 가을의 촉석루는 더없는 풍취를 안겨주니 가을 미식 여행지로 손색없다. 진주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는 다른 특색이 있다. 일단 선짓국과 함께 먹는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고기로는 육회를 얹고 그 피로는 선짓국을 끓인다. 진주비빔밥은 진주의 기방에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고,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들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소를 잡아 비빔밥을 해 먹은 것이 기원이 됐다는 설도 있다. 진주비빔밥을 칠보화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황색의 놋그릇과 흰밥 그리고 다섯 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을 내어 그 모양이 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숙주나물, 시금치, 고사리, 무채 등을 넣고 가운데에는 참기름과 마늘 등으로 양념한 육회를 얹어 비벼 먹는다. 그 맛과 영양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선비들까지 진주비빔밥을 먹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왔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그저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이야 흔하디흔한 것이 비빔밥이라지만 가을 햅쌀과 선홍빛 감도는 신선한 육회, 비타민이 풍부한 나물을 두루 섞어 만든 진주비빔밥 한 그릇이면 그 자체로 든든한 보약이 된다. 진주 시내에서는 천황식당과 제일식당 등이 유명하다. 천황식당은 80년간 3대째 진주비빔밥을 계승해오고 있으며, 겨울엔 '속대기'라는 해조류를 사용해 풍미를 더하고 봄가을엔 미나리, 여름엔 호박으로 맛을 배가시킨다. 재래식으로 직접 담근 고추장은 많이 먹어도 맵지 않고 고소하다. 이 집의 선짓국도 별미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깨끗하고 맛있는 집이기도 하다. 비빔밥은 한 그릇에 8천원이고 석쇠에 구워주는 불고기는 한 접시에 2만원, 육회는 3만원이다. 몇십 개의 장어집이 남강과 나란히 열을 맞추고 있어 남강의 풍광을 보며 식사할 수 있다. 장어는 고추장 양념과 소금 양념 두 가지이며 장어를 먹은 후엔 장어탕으로 식사한다.
서늘한 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엔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이 제격. 예로부터 추어탕은 배고픈 시절 가을걷이가 끝난 뒤 여름철 축난 몸을 추스르고 다가올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먹는 보양식이었다. '양기(陽氣)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에 기술된 이러한 추어탕의 효능은 과장이 아니다. 추어탕에는 생리 활성을 촉진하는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어 중년 이후의 정력 감퇴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고혈압을 내리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남원은 지리적으로 전라도 동부 지역의 산악 중심 도시로 예로부터 그 영역이 광대했고 산악문화와 농경문화가 조화를 이루어 먹을거리도 풍부했다. 풍부한 퇴적층의 너른 평야가 형성된 만큼 미꾸라지를 흔하게 잡을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나는 고랭지 푸성귀를 말린 시래기와 질 좋은 초피(전라도에서는 젠피라 부른다)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남원에는 광한루원 일대인 천거동을 중심으로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광한루원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줄지어 있는 추어탕집만 해도 50여 군데에 이른다. 광한루원에서 곡성 쪽으로 300m 지점에 1959년에 문을 연 남원추어탕의 원조인 '새집추어탕'이 있고, 그 주위의 도로변 식당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추어탕집들이다. 추어탕 거리에 있는 식당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맛을 자랑한다. 집집마다의 특색과 다른 맛 덕분에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추어탕 거리의 매력이다. 남원에서 생산되는 자연산을 비롯해 남원과 인근 지역에서 기른 양식 미꾸라지로 모두 국내산임이 보증된다. 남원시종합관광안내센터(063-632-1330)
의외로 번잡하지 않은 단풍 여행지로 손꼽힌다. 태백 하면 주로 겨울산 여행이나 눈축제를 떠올리기 때문인지 비교적 한산하게 가을의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것. 남쪽보다 더 선명하고 붉은 단풍이 압권이다. 가을 단풍 여행지로 좋은 태백에서는 한우도 맛있지만 이색적인 음식으로는 태백에만 있는 물닭갈비를 꼽을 수 있다. 물닭갈비는 춘천닭갈비와 달리 물을 흥건하게 넣고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닭갈비와 닭볶음탕의 중간 정도 요리라고 할 수 있는데 부추, 미나리, 쑥갓 등 채소와 당면 등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라면, 우동, 고구마 등을 사리로 넣고 밥까지 비벼 먹는 것은 춘천닭갈비와 비슷하지만 끓이는 방식이나 맛에는 차이가 있다. 얼큰한 국물까지 즐길 수 있는 '물에 빠진 닭갈비'다. 가격도 저렴해서 현지인들도 즐겨 먹는 별미다. 가을 단풍길 산책을 하기에 좋다. 화암약수의 톡 쏘는 맛은 건강한 맛이다. 탄산이온과 철분, 칼슘, 불소 등 9가지 몸에 좋은 성분이 녹아 있어 위장병과 눈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약수는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아니라 밑에서 샘솟는 물로, 하루 용출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그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은 늘 줄을 선다. 몸에 좋은 약수는 입에도 달다. 화암약수터를 돌아 내려오는 길은 단풍 천지다. 그 곁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가족들의 아웅다웅하는 모습마저 정겹다. 약수 한 모금 마시고 동강을 옆에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도 손에 꼽히는 절경이다. 동강 물길 100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리랑처럼 구불구불한 시간과 사연을 안고 흐른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평창에서 메밀 꽃 피는 이 가을에 메밀 음식 먹지 않고 지나칠 수 없다. 평창이 위치한 해발 700m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는 지역으로 이는 인체에 가장 적합한 기압이다. 덕분에 생체리듬이 좋아질 뿐 아니라 충분한 혈류 공급으로 인해 젖산과 노폐물 제거에도 효과가 있어 피로 해소도 빠르다. 이러한 기압에서는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증가해 5~6시간만으로도 충분한 수면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즉 해발 700m의 고지가 사람과 동식물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고도라는 것. 평창을 '해피 700'이라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기온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인 평창에는 고랭지 환경에서 자란 식재료가 많다. 여름엔 강원도 대표 농산물인 감자와 옥수수가, 가을엔 버섯과 메밀, 겨울엔 황태가 유명하다. 1970년대부터는 강원도 특산물인 메밀부치기를 팔기 시작해 강원도에서도 원조격이다. 평창올림픽시장에 가면 메밀부치기와 메밀전병, 메밀국수 등 다양한 메밀 음식을 먹고 다채로운 경험도 할 수 있다. 시장 중앙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메밀 음식점들인데 대개 밖에서 전을 부치며 손님을 유혹한다. 그 담백한 맛이 없던 입맛도 당기게 한다. 모두 강원도 메밀로 만든 음식으로 도정 과정에 따라 색이나 식감이 달라진다. 다만 장날에는 특별히 당나귀를 타고 시장을 도는 체험이나 마당극이 펼쳐지기도 한다. 고향의 손맛이 느껴지는 다양한 전통 먹을거리를 판매하고 있어 시장에 놀러 온 여행자들에게 재래시장의 깊은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지역의 개성 있는 먹을거리와 강원도 사람 특유의 투박한 구수함이 어우러진 시장 인심을 흥건히 느낄 수 있다. 시장표 음식들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그 맛이나 인심과 함께 착한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메밀부치기와 메밀전병은 3장에 각 2천원이고 메밀국수도 5천~6천원 선이다. 평창군 봉평면에서는 매년 흐드러진 메밀꽃을 실컷 보며 메밀 음식을 즐기고 각종 문화 공연까지 누릴 수 있는 효석문화제를 여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9월 5일부터 14일까지 10일간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펼쳐진다. 033-332-2517, olympic-market.tistory.coms), 효석문화제(www.hyoseok.com)
전라남도와 경상남도를 두루 오가는 코레일 남도해양관광열차인 S트레인을 타고 여기저기 남도 지방을 훑으며 주전부리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S트레인이 정차하는 역들은 모두 남도의 갖은 진미를 품고 있지만, 이번엔 늘 입이 궁금한 부모님과 아이들까지 만족시키는 맛깔스러운 주전부리 여행이다. 가을 문화축제로 이만큼 풍성한 문화의 향연도 드물다. 낮에는 비엔날레를 구경하고 바람 선선한 가을밤에는 야외에서 맥주 한 잔 즐기는 것도 좋다. 맥주와 함께 즐기는 광주의 대표적 간식은 상추튀김이다. 상추튀김이라고 해서 깻잎튀김이나 고추튀김처럼 상추에 밀가루옷을 입혀 기름에 튀긴 것이 아니라 쌈처럼 각종 튀김을 상추에 싸 먹는 것을 말한다. 고기를 싸 먹듯 상추 위에 튀김을 올려놓고 송송 썬 청양고추와 양파가 들어간 매운 간장소스를 된장처럼 튀김 위에 올려 싸 먹는다. 튀김에 청양고추와 양파가 합세하니 느끼한 맛은 가시고 의외로 담백하고 개운한 맛을 낸다. 상추의 아삭함과 튀김의 바삭함이 어우러져 아삭바삭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그냥 먹으면 느끼한 튀김을 청양고추를 곁들인 상추에 싸 먹으니 느끼한 줄 모르고 먹는다. 1만원 이내의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한 요기와 맥주까지 곁들일 수 있다. 광주 상무지구 상무중앙로(치평동)에 있는 '현완단겸'의 상추튀김은 바로바로 튀겨내 바삭한 맛을 자랑한다. 광주 무등시장에도 유명한 상추튀김집이 있다. 재래시장의 정서가 그리운 사람이라면 무등시장의 '튀김나라'도 괜찮다. 노란 치잣물로 튀김옷을 입혀 먹음직스럽다.
순천정원박람회는 끝났지만 새롭게 단장한 순천만에서 가을의 정취를 십분 누릴 수 있다. 순천에는 맛집도 많지만 오가며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도 쏠쏠하다. 순천만 가는 길에 달달한 간식을 사들고 갈대밭을 걸어도 좋겠다. 순천 번화가인 중앙로에는 90년이나 된 오래된 빵집, '화월당'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에 걸쳐 이어오고 있다. 화월당에서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빵만 판다. 하나는 볼카스텔라이고 또 하나는 찹쌀떡이다. 화월당의 명물이 된 볼카스텔라 주문이 너무 밀려 다른 빵은 아예 만들 엄두조차 못 낸단다. 하나에 1천5백원인 볼카스텔라와 1천원인 찹쌀떡은 늘 입이 궁금한 여행자들에게도 무한 사랑을 받는 간식이다. 부드러운 카스텔라 속에는 팥이 가득 들었다. 그래서 아주 달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이 달지는 않다. 달달한 정도야 사람 입맛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디저트로 혹은 출출할 때 약간 달달하게 먹을 만한 정도다. 아직 이가 성치 않은 어린아이나 잇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좋아할 법하다. 카스텔라의 부드러운 맛이 편안하게 입 안을 감돌며 고소한 향을 풍긴다. 보통 오후 3~4시면 빵이 떨어질 정도로 인기가 좋다. 돌산 갓을 김치로만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편견이다. 여수에는 갓을 15%나 넣어 만든 갓빵과 갓파이가 있다. 특정한 성분이 15% 넘게 들어가면 기능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갓구운'의 갓빵은 기능성 빵이다. 결국 유황 성분을 분해시키는 효소로 빵을 만드는 비법을 개발했다. 이곳에서 만드는 기능성 빵은 6가지다. 방풍잎과 천년초잼을 활용해 만든 고요타와 갓을 넣은 갓오동빵, 돌산갓파이, 갓티쿠키 그리고 천년초를 넣어 만든 천년초피셀 등이다. 갓을 충분히 넣어 기능성 빵을 만들되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갓 맛은 거의 나지 않게 했다. 갓빵은 건강빵이다. 보통 밀가루 음식이나 빵을 먹고 나면 더부룩해지거나 신트림이 나는 글루텐 부작용도 없다. 돌산대교가 바라보이는 돌산공원에서 시원한 가을밤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돌산공원에 오르면 시시각각 다른 빛을 내는 돌산대교는 물론 시내 야경까지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밤바다의 등대 불빛과 점점이 떠 있는 고깃배들도 낭만적이다. 근방에는 전망 좋고 분위기 있는 해안 카페가 많아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다. 문의 코레일(www.korail.com, 1544-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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