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을 보호하고 동시에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생태관광', 왕피천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지역 주민들이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삼근리, 왕피리, 수곡리, 구산리에 걸쳐 조성 및 복원된 왕피길의 세가지 코스를 차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양 수비부터 시작해 왕피리를 거쳐 하천 곳곳에 바위들의 경연장이 펼쳐진다. 물길과 암석이 빚은 대자연의 전시장, 자연박물관이 바로 왕피천이다. 왕피천 협곡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굴구지 마을을 거점으로 하여 접근해야 가능하다. 굴구지는 굴같이 생긴 아홉 구비를 넘는다는 뜻을 가진 구산3리 마을의 고유 이름이다. 과거에는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를 정도로 오지 마을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힘들어 대개 하루 미리 와서 산촌펜션에서 밤을 보낸다. 이외에도 마을에는 개별 민박집이 12곳 있다. 대부분의 민박집에서 식사가 가능하며, 마을에서 지정한 주민운영 식당에서도 식사가 제공된다. 자연에 그림자만 남기는 책임여행, 탐방객과 지역주민이 상생하는 공정여행을 위해 풀 한 포기 훼손해서도 안 되며, 쓰레기를 버려서도 안 된다. 숲 해설사를 앞서 가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도로지만 차 한 대가 조심스럽게 지나다닐 정도로 폭이 좁다. 왕피천에서도 과거 대표적인 오지 마을이었던 상천동으로 가는 길이다. 상천동까지 이어진 도로는 벼랑 사이로 길이 나 있으며, 벼랑 아래가 바로 왕피천 본류의 물줄기다. 상천동에는 아직도 옛 모습의 원형이 일부 남아 있어 남한의 오지 마을이 2000년대 이전까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 열 가구 가량의 주민이 살았으나 이제는 다 굴구지 마을로 내려오고 이제는 민박을 운영하는 주민 한 집만 남아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덩그러이 놓인 집 두 채는 오지마을의 조용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환경부에서 왕피천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현장관리사무소다. 이곳에서 탐방로로 접어들면 바로 50년 가까이 된 숲이 울창하게 펼쳐진다. 화전 마을이다. 이곳에는 과거에 주민들이 다니던 왕피리까지 이어진 옛길이 있다. 이 옛길로 상류에 해당하는 왕피리의 거야마을이나 속사마을의 할머니들이 시집 올 때 가마를 타고 왔다. 지금 길을 넓혀도 탐방객들이 한 줄로 서서 갈 정도인데, 두 사람이 짚신을 신고 가마를 메고 험한 길을 걸어오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옛사람들의 발길이 느껴질 만큼 그대로 보존하고 비탈길에만 나무와 돌을 활용했다. 가급적 인공구조물을 덜 사용하여 조성한 길이다. 그렇기에 크기가 들쭉날쭉한 바위를 밟고 가고, 때로는 깎아 지르는 듯한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할 때도 있다. 다소 '불친절한 길'일지라도 이 길은 자연 그대로, 역사 그대로를 담고 있다. 험한 바위가 있어 여기가 길인가 싶은 곳에는 '왕피천 생태 탐방로'라는 이정표가 있다. 생태탐방로가 왕피천 물줄기와 가까이 이어지며, 이내 학소대 안내판이 나타난다. 굴구지마을 앞 양쪽으로 흐르는 냇물 속에 섬처럼 우뚝 솟은 큰 바위 위에 학의 집이 있었다고 하여 이를 학소대(鶴巢台)라 부른다. 학소대는 학이 오가는 듯한 바위지대가 형성되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같은 경관을 보여준다. 십장생 중의 하나인 학이 매년 돌아온다는 길조의 장소다. 지금은 학이 자기 둥지로 돌아오지 않고 학소대라는 이름만 남아 있다.
중간에 큰단지골이라 불리는 유량이 풍부한 계곡을 만난다. 이 계곡에서는 짙은 녹색의 아름다움이 여름색을 띠며 뿜어져 나온다. 물에 반사돼 올라오는 온기가 제법 후끈하다. 협곡을 따라서 왕피리로 이어지는 생태탐방로에는 노루 발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사람 발자국과는 달리 V자로 파여 있다. 짐승이 가는 길을 사람이 다녀서 길이 된다고 한다. 짐승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운 길을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검고 조그맣게 동그란 모양의 똥에서는 윤기가 흐르는데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왕피천의 물이 깨끗한 이유는 돌을 지나면서 오염원이 자동정화 되기 때문이다. 우렁이 등이 오염원을 먹기도 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폭포가 수도 없이 나온다. 계곡은 점입가경이다. 들어갈수록 절경이고, 비경이다. 계곡의 물은 바위 색깔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쑥색 바위가 있는 소는 진한 녹색이고, 흰 화강석 바위의 물은 투명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와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이 들리는 청정자연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물 따라 산 따라 걷다보면 하천 옆으로 거북이의 형상을 한 거북바위가 나타난다. 울진의 대표 특산물 송이를 옮겨 놓은 듯한 송이바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그 생각을 할 때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내천을 건너 산으로 이동한다. 걸으며 눈에만 담아왔던 왕피천 물줄기와 하나가 되는 경이로운 체험이다. 왕피천 계곡에서는 길이 없다고 생각되면 곧 새 길이 나타나고, 그러다가 막히면 에둘러 가면 된다. 계곡물은 대부분 얕고 넓은 자갈밭이 있어 쉬거나 물놀이하기에 좋다. 멀리서 볼 때는 여유 있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살이 센 구간은 움직임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끼가 낀 바위는 건너다 넘어져 온몸을 적시게 할 만큼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낮은 지대로 조심히 건너면 생태하천을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다. 그 중 윗부분이 평평한 바위면 좋다. 큰 바위에 누우면 침대가 된다. 거북바위 조망대에 앉아 잠시 젖은 옷을 말리며 휴식을 취한다. 다시 몸을 일으켜 하천 위의 숲을 파고들어 올라가면 학이 오가는 듯한 형상의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마치 자연에 넓게 펼쳐진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소대, 용소 전망대까지 동일한 탐방로를 이용하여 되돌아 나온다. 거북바위는 2구간의 회귀 지점이다. 아침에 지나온 코스와 다른 점은, 용소 위쪽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에서 상천동초소로 가지 않고 물줄기를 만날 수 있는 용소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불영사를 지을 당시, 용 세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왕피천을 따라 내려와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을축년 대홍수를 예감한 용이 용소에서 금빛 비늘을 번쩍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왕피리에 사는 새댁이 굴구지 친정으로 만삭의 몸을 풀러가다가 보게 됐다고 한다. 새댁은 그 자리에서 눈이 멀었고, 낳은 아이의 몸에는 금빛 비늘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과거에는 기에 눌려 사람들이 절대 지나다닐 수 없는 곳이었고, 신성한 곳이어서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깊은 협곡에 존재해 왕피천 수계 중 가장 아름답지만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굴구지 마을로 내려가면 왕피길 2구간이 끝난다. 덧붙이는 글 | 장나래 기자는 왕피천에코투어 사업단 청년홍보단에서 활동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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