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사랑에 빠진 뇌의 세레나데

blueroad 2016. 2. 24. 13:52

 

 

 

 

 

저는 신경과학적인 방법으로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오늘은 ‘사랑’을 주제로 강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환원주의(reductionism)에 영향을 받은 과학이나 생물학이 사랑을 교미나 성(性)에 환원시켜서 연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현상으로써의 사랑은 존재합니다.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다양하고 화려해서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현상이 존재하지만, 그것에 대해 과학이 잘 모르고 있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나에게 사랑이 생겼고 내 마음에 사랑이 있기에 내 몸이 떨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자인 제임스 박사는 ‘우리 몸이 떨고 있기 때문에 우리 뇌가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낸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 아서 아론(Arthur Aron)과 도널드 더튼(Donald Dutton) 박사가 실험적으로 증명했는데요. 바로 ‘카필라노의 법칙(구름다리 효과)’입니다.


카필라노 협곡(Capilano Canyon)에는 두 종류의 다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굉장히 위험한 다리고 다른 하나는 안전한 다리입니다. 어떤 여성분이 이 다리에서 앙케트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혹시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전화번호를 건넵니다. 재미있는 것이 안전한 다리에서 앙케트를 한 100 명의 남자 중에 연락을 해온 사람은 한두 명 정도였는데, 위험한 다리에서 앙케트를 한 남자들의


경우는 80% 정도가 연락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작업을 거는 전화를 한 거죠. 공포심이 만든 떨림을 상대에 대한 설렘의 감정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떨리는 감정과 사랑의 감정이라는 게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것이 연결되는 과정이 사랑의 느낌이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DNA 구조를 발견한 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우리가 어떻게 깨닫게 되고 알게 되는가’를 연구했습니다. 결론은 시상핵과 대뇌피질이 상호작용을 통해 인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자극이 동시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인식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동시에 들어오는 신호를 뇌가 연결하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 있습니다. 실제 소리와 입 모양이 다르면 사람은 실제 소리와 달리 혼란을 일으킨다는 거죠. 왜냐하면 뇌는 시각자극과 청각 자극을 억지로 합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뇌는 정보가 들어오면 그걸 합치려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소리 자극이든 빛 자극이든 뇌에 들어가면 이들은 모두 신경을 활성화하는 자극으로, 성질이 같기 때문에 얼마든지 합쳐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감정을 덧입힐 수 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을 개척한 존 왓슨(John B. Watson)과 로잘리 레이너(Rosalie Rayner)가 실험한 ‘앨버트 실험(Little Albert Experiment)’이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실험이었죠. 앨버트라는 꼬마를 데려다가 실험을 했는데요, 아이가 흰쥐를 가지고 놀고 있을 때 뒤에서 엄청나게 큰 ‘땅’ 소리를 냅니다. 애가 놀랐겠죠. 그 이후에도 쥐를 만질 때마다 깜짝 놀라게 했더니 나중에는 아이가 쥐를 무서워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쥐’라는 정보와 ‘큰 소리’라는 무서운 감정이 연합된 것인데 이후 이 꼬마는 흰쥐만 무서워한 게 아니라 흰색 털을 가진 모든 것을 무서워하게 됐어요. 흰 토끼도 무서워하게 되고 흰색 털도 무서워하게 되고 말이죠. 이런 일들은 우리 뇌세포 속에 신경망이 있고, 그 신경은 언제든지 서로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a’라는 신경과 ‘c’라는 신경이 동시에 자극되면 신경 간의 연결이 심화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a’라는 자극만 줘도 ‘c’가 같이 떠오르게 되는 거에요. 이것을 ‘패턴완성’이라고 합니다.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 보셨나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이병헌 씨는 사랑하는 애인과 사별합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자 제자에게 갑자기 사랑하는 감정이 생깁니다. 왜 그런 감정이 생기나 봤더니 이 학생이 자기가 사랑했던 그 여성의 습관 등 몇 가지 모티브를 갖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동성애 영화라기보다는 신경과학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비슷한 자극이 나머지 사랑의 감정까지 같이 끌어올린 ‘패턴완성’이 이뤄진 것입니다.




뇌의 시상하부에는 여러 가지 신경들이 있는데, 이를 이용해 ‘물건에 대한 사랑’에 관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뇌의 시상하부에 사랑과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자극한 다음 쥐에게 물건을 넣어주었습니다. 탁구공을 넣어주었더니 쥐가 탁구공과 사랑에 빠지게 됐어요. ‘신경 회로를 자극하면 물건에 대한 사랑도 유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물건을 넣어줘도 이 쥐가 그것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을 보이고 애착을 갖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 우리가 동물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겠죠. 물건의 종류와 상관없이 물건을 주는 상황에서 시상하부에 자극만 주면 그 물건에 애착이 생기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사랑회로가 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회로가 있을까? 사실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크 판크세프(Jaak Panksepp) 박사는 우리 뇌에도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고 사랑을 만들어 내는 회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회로가 자극되면 뇌가 건강하게 되고 그 다음에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하지요.


자크 판크세프 박사도 쥐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분이 쥐가 웃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롱-에반스(Long-Evans)’라는 생쥐가 있는데요. 생쥐의 배를 긁어주었습니다. 쥐가 웃는데 우리는 듣지 못합니다.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음파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한 고주파여서 고양이와 같은 포식자들은 듣지 못합니다. 동물도 웃을 줄 안다, 적어도 좋으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죠.



뇌에 웃음이나 어떤 감정을 조절하는 회로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드쉬네(Duchenne) 박사가 있습니다. 이 분이 웃음을 만드는 두 가지 근육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관골근(zygomaticus major muscle)은 주로 입가에 있는 근육이고, 눈둘레근육(orbicularis)은 눈 근처에 있는 근육인데, 이 두 가지 그 근육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것을 뇌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좌뇌나 우뇌에 손상이 생겨 한쪽 근육을 못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한테 억지로 ‘한 번 웃어보세요’라고 하면 한쪽 면은 웃는데 다른 한쪽은 못 웃죠. 그런데 이 분들한테 재미있는 농담을 하게 되면 활짝 웃습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회로 말고 다른 회로가 있어서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경생물학적으로 볼 때는 우리가 웃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행복하니까 웃는 거예요. 억지로 웃으면은 진정한 웃음을 웃을 수가 없어요. 이것은 가상의 회로이기 때문에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랑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하게 밝혀진 기능 중의 하나는 ‘사랑이라는 회로가 우리의 분노를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다른 말로 얘기하면 ‘분노의 물탱크’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점잖게 앉아있지만 언제든지 분노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분노조절에 관해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에가스 모니스(Egas Moniz) 박사가 개발한 ‘전두엽 절제술’이 있는데, 쇠꼬챙이를 눈 밑으로 넣어 전두엽에 살짝 상처를 내게 되면 굉장히 폭력적이던 사람이 온순해집니다. ‘천사의 시술’이라고 해서 1949년에 노벨상을 받았다가 취소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 시술이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판단능력을 제거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앤더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시상하부에 공격성을 일으키는 세포와 사랑을 만들어내는 세포가 이웃해 있다고 합니다. 수컷의 경우 알지 못하는 수컷이 자기 공간에 들어오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분노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다 또 다른 침입자를 더 넣어주었더니 분노가 증가하게 됩니다. 반면에 똑같은 조건에서 이 쥐가 잘 아는 암컷 생쥐를 넣어줬어요. 분노신경세포는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데, 여기다가 여자친구를 넣어줬더니 조용해지는 겁니다. 분노신경세포가 어떠한 사랑세포에 의해서 억제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자 친구와 좋은 분위기에 있는 순간에 우리가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는 방법으로 공격세포를 자극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싸움을 시작하는 거에요. 사랑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동시에 존재할 수 없어요.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 박사는 행동 중에서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행동이 있다고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사랑과 폭력’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했기 때문에 때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의 힘이 억제되고 분노신경이 활성화된 겁니다. 신경 과학적으로 사랑의 매는 가능하지 않은 거죠.





뱀의 먹이로 쥐를 줍니다. 먹이가 된 쥐의 친구가 자기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뱀을 물고 공격하는 장면이 관찰된 적이 있는데요. 이것이 실험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시카고대학 페기 메이슨(Peggy Mason) 박사가 논문에서 밝혔습니다. 즉 ‘친구를 구해주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걸 말이죠. 친구가 갇혀있는데 갇혀있는 친구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쥐가 결국에는 문을 여는 것을 배워서 열어줍니다. 탈출을 시키는 거에요. 우리 뇌에는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고 자기가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는 회로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뇌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을 받거나 내 친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교감하는 부위를 실제로 자극해보거나 활성을 측정해봤어요. 실제로 정상 생쥐는 친한 생쥐를 보면 교감 반응을 나타납니다. 실제로 친구가 고통 받는 것을 보면 같이 공포를 느끼는 거에요. 그 감정을 공유하는 거죠. 공포 반응이 굉장히 증가하는 것입니다. 교감과 관련된 신경을 억제해봤어요. 공포반응이 안 나타나요. 교감이 안 되는 거죠. 서로 이렇게 끈끈한 줄로 연결된 생물학적 의의가 무엇이냐 하면 나하고 연결된 사람들의 모든 경험을 내 걸로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교감인 거죠. 교감을 만들어내는 그런 신경은 또 다른 일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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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교감’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뇌에 있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사랑’은 번식이라는 생물학적인 기능을 넘어서 폭력을 억제하거나 교감을 통해 관계 갈등을 해소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나아가서는 학교 폭력과 우울증 같은 다양한 문제를 사랑에 관련된 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이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상으로 강연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