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자, 관리자, 스승, 영웅….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혹은 어떤 리더와 함께 일하고 싶은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갈아입어야 할 리더십의 옷을 마에스트로를 통해 살펴보는 건 어떨까.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로 오케스트라 드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지휘해 온 이타이 탈감은 협력과 리더십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의 지휘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탈감은 ‘마에스트로 리더십’ (세종서적)에서 그동안 ‘위대한 지휘자’들이 연주자와 관객을 어떻게 ‘리드’했는지 분석한다. 음악계의 평가나 결과물의 훌륭함 등과는 별개로 지휘자들은 두려운 독재자, 자유로운 영혼, 자식을 품는 아버지, 또는 행복 바이러스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형은 누구였을까.
◇ 리카르도 무티, 최고의 효율성을 만들어내는 독재자 = 제왕적 스타일의 무티(74)는 분명하고 명확한 지시로 무장하고 난국에 대처한다. 자신이 지휘자로서 완전한 책임을 질 테니, 완전한 통제권을 달라는 것. 그는 연주자들이 알아서 준비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드시 자신의 메시지를 연주자들에게 알려준다. 예컨대, 자신이 박자를 치는 모습을 모든 연주자가 어느 자리에서든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리더는 보통 일의 모든 양상에 관한 세밀한 관리를 위해, 직원들에게 끝없이 지시를 내린다. 그래야 아주 잠시라도 직원들이 ‘올바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무티의 결과물들은 대체로 준수하지만, 탈감은 실제로 경영에서 이렇게 직원들의 영역을 최소화하면, 역설적으로 지도자 본인의 영역도 최소화된다고 지적한다.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강렬한 에너지로 사람을 이끄는 구루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 베를린 필하모닉을 35년간 이끈 지휘자 카라얀(1908~1989)은 공연 중에 지시를 내리느라 바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손짓도 여느 지휘자들과 전혀 달랐다.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은 동작들. 그는 특정 박자에 신호를 빼먹기도 하는 등 소위 수많은 ‘간격’으로 오히려 연주자들이 완벽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매력, 즉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이정표도 규정도 지시도 없이 말이다. 탈감은 카라얀과 무티가 ‘거울 이미지’라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독점적인 비전이 있지만, 이를 부과하는 방식이 정 반대라는 것. 무티는 분명한 지시로 최대의 통제 효과를 거뒀고, 카라얀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애매모호함을 보충해 주면서 연주를 발전시켰다.
◇ 카를로스 클라이버 협력을 이끌어내는 자유로운 통제자 = 무티조차 동시대 지휘자들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송한 클라이버(1930~2004)는 매우 즐거운 사람이었다. 탈감에 따르면 그 즐거움은 전염성이 있고 충만해서 마치 춤을 추며 다가오는 것과 같았다. 클라이버는 연주자들이 아니라 음악의 과정을 통제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독특하고 자유로운 ‘통제의 형식’이다. 물론, 그만큼 연주자들이 여타 지휘자들과 일할 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하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어떤 연주자들은 이에 대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했지만, 탈감은 클라이버와 같은 지도자의 장점을 두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 엄숙함과 갈등을 이겨내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활력을 공급하며, 둘째, 간혹 일을 이해하지 못해 밀려날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안전망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 레너드 번스타인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의미추구자 = 록스타 같은 명성을 누린 관현악단 지휘자 번스타인(1918~1990)은 뉴욕 필하모닉 최초의 미국인·최연소 음악 감독이었다. 탈감은 번스타인을 지도자의 궁극적인 전형으로 평가했다. 그가 자신뿐 아니라 연주자와 관객에게도 전인(全人)이 되길 요구한 유일한 지휘자라는 거다. 무티와 카라얀이 (다른 방식으로) 연주자를 악기처럼 ‘부린’ 반면, 번스타인은 연주, 청취, 작곡, 지휘에 연주자가 전인으로 참여하기를 바랐다. 함께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공유해야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감정적, 지적, 음악적, 도덕적 관점을 모두 망라하는 포괄적 대화를 사람들과 나눴다. 또, 번스타인은 상대에게 존경심을 보여 동등한 대화를 이어가는 걸로 유명했다. 탈감은 이러한 방식이 결코 강력한 권위와 배치되지 않는다며, 동료와 진정한 파트너 관계를 맺고 싶은 지도자가 명심해야 할 요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