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의 고마움을 일깨워주는 여름날 북한강변 자전거 여행.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가 들릴 때면 지친 내 마음에 조금은 위로를 받게 되고, 언제나 춘천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된다. 아쉽게도 예전의 기차 길과는 다른 풍경의 길을 달려가게 되었다. 이렇게 전철이 앗아간(?) 경춘선만의 운치를 아쉬워만 하다가 떠오른 게 북한강 자전거 길이다. 과거 춘천 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옛 기찻길을 최대한 활용했다. 덕분에 대성리, 청평유원지, 가평 자라섬, 강촌유원지, 춘천 의암호 등 청년 시절 아련한 추억이 깃든 경춘선의 향수 속으로 한껏 빠져들 수 있었다.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북한강이다보니 자전거 길에도 여러 개의 (가파르진 않은) 언덕길이 있어 오르막길은 힘들게 오르고, 내리막길은 짜릿하게 내리 달리는 변화무쌍한 길도 좋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한껏 뜨거워진 여행자의 심신을 서늘하게 식혀주는 터널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자전거 타고 한강, 남한강을 지나 북한강으로 ▲ 여행자들의 쉼터, 정다운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된 간이역 능내역. ▲ 북한강변 자전거 길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진중 습지 공원 혹은 뱃나들이들. 자전거로 한강, 남한강을 지나 북한강변, 의암호수를 지나는 긴 거리다. 아침 나절부터 부지런히 달리면 넉넉잡고 6시간 후 도착할 거리지만 날도 더운데 기를 쓰고 달리기보다는 아름다운 북한강변을 좀 더 여유롭게 달리고 싶었다. 가평과 춘천, 북한강변에도 먹을 데는 많으니 취사도구는 빼고 자전거에 집(텐트)만 싣자 자전거 캠핑 여행이 한결 가뿐하다. 여름날의 캠핑여행엔 두꺼운 침낭을 가져가지 않아도 되니 더욱 좋다. 낚시하는 아저씨들은 어떤 물고기를 낚았을까 궁금하고,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의 음악을 즐거이 감상하게 되는가 하면, 노랗게 피어난 길섶의 예쁜 여름 들꽃 '금계국'도 춘천 여행을 환송해주는 것 같다. 거대한 수족관 혹은 수로처럼 느껴지는 강 비스 무리한 한강과 달리 남한강은 살아 있는 '강물의 빛'과 운치를 띄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남한강변에 이어진 자전거도로는 중앙선 기차가 달렸던 철길이다. 이제 기차가 서지 않지만 자전거 여행자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는 간이역 능내역은 이 길의 명소. 북한강변 자전거도로에도 있는 기차가 지나갔던 시커먼 터널 속을 안전하고 시원하게 달리는 것도 이 길의 즐거움이다. 능내역을 지나 운길산역에 닿으면 비로소 북한강이 장쾌하게 나타난다. 자전거로 한강에서 남한강을 지나 북한강까지 3개의 강을 지나다니 웬지 뿌듯하다. 진중 습지는 예부터 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뱃나들이들'이라는 정겨운 지명이 전해진다. 북한강변 자전거도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풍성하고 자연스러운 습지이다. 굳이 구도를 잡으며 찍지 않아도 저절로 사진 속에 그려지는 강변 풍경을 볼 수 있다. 강변 습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공구리 길'이 아닌 흙길이어서 더욱 좋았다.
북한강의 낭만 캠핑장, 자라섬에서의 하룻밤 ▲ 여름날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북한강변의 터널들, 경춘선 기차안을 잠시 컴컴하게 해주었던 곳이다. ▲ 청평리 청평 유원지는 물에 뛰어들 수도 있고 아직도 옛 정취가 남아 있어 좋았다. 같은 강물인데 유장하고 여성적인 느낌의 남한강변과는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어릴 적엔 계란꽃이라 불렀던 예쁜 '개망초' 꽃 군락 너머로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물 위를 내달리는 수상 스키는 보기만 해도 상쾌하다. 장쾌하게 펼쳐진 북한강을 바라보며 달리다 얼굴을 두드리는 한줄기 바람까지 불어오면 더운 줄도 힘든 줄도 모르게 된다. 앞에서 부는 자전거 라이더를 힘들게 하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등 뒤에서 밀어주는 고마운 바람도 있다. 나무는 모두 시원한 그늘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태양이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정오 무렵엔 나무들도 최대한 햇볕을 덜 받기 위해 자기 몸속에만 그림자를 간직하고 서있다. 전기로 가는 자전거구나 했는데 일본에서 해외 직구로 구입한 가솔린 연료와 페달을 같이 쓰는 자전거란다. 우리도 어서 통일이 되어 외국에 의존해야 하는 수출에 목 매지 않고 내수시장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음 좋겠다. 도시에선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달리기 힘든데, 한갓진 북한강변 길에서 처음 만난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자전거 여행을 하는 기분은 옛 생각도 나고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내내 안구정화만 하던 강변에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 청평 유원지가 나타난다. MT온 남녀 학생들이 물놀이하는 모습과 강변의 수수한 민박촌은 슬며시 웃음짓게 하고 그때의 친구들과 즐거웠던 경춘선 기차여행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했다. ▲ 가평군에서 운영하고 있는 넓고 쾌적한 자라섬 캠핑장. ▲ 저녁 나절 한갓진 산책로가 참 좋은 가평 자라섬.
한여름엔 물놀이 인파로 북적거리는 조종천 주변엔 농가와 옥수수, 깨 등을 재배하는 밭 등 시골 풍경이 이어져 푸근하다. 지구를 태워 버릴 듯 이글거리던 태양의 포화가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듯한 둥그런 햇살이 된다. 가까이에 있는 명소 남이섬과 달리 육지와 길이 연결되어 있다. 중도, 서도, 남도의 세 개 섬이 이어져 있으며 캠핑장 외에도 낚시터, 요트장, 식물원, 카페 등이 있다. 무엇보다 한적한 강변 산책로가 좋아 걷거나 자전거 타고 돌아보기 좋은 공원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섬이었다가 해방이후 중국인들이 살면서 농사를 지었다는데서 '중국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어느 쌀가게 앞에서 수 십 킬로의 쌀을 뒤에 싣고도 고장 없이 잘 달린다는 자전거계의 전설 '쌀가게 철자전거'를 보게 되어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 마냥 무척 반가웠다. 유년시절 저런 짐자전거로 처음 자전거를 배워서 그랬나보다. 제 몸을 태우며 북한강변을 달려온 배고픈 자전거 여행자에게 '김밥천국'의 김밥과 단무지, 맑은 된장국은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지가 않다. 도시 생활은 밥 먹을 때도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기 쉽고, 잠 잘 땐 이런 저런 걱정에 쉬이 잠들지 못할 때가 많다. 순간에 몰입하고 순간을 산다는 것이 행복의 또 다른 길임을 깨닫게 된다. 군청에서 운영하는 데라 비용도 저렴하고 화장실, 샤워장 같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찬물에 시원하게 씻고 개운한 기분으로 저녁녘 자라섬 강변길 산책을 했다. 새소리들만큼이나 다양한 풀벌레들의 노랫소리와 가로등이 은은하게 켜진 섬 강변길은 무척 분위기 있고 아늑했다.
고가도로 그늘이 시원한 춘천 풍물시장 ▲ 붕어섬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춘천 의암호 나무 자전거 길.
춘천이 멀지 않았구나 실감이 들고 무엇보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오다니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자전거 길이 더욱 한적해져서 그런지 가끔씩 지나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목례, 손짓, '안녕하세요~' 등으로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아직 만족을 못했는지 강가의 산꼭대기까지 굴착기가 올라가 산을 깎아 내리고 있는 공사현장은 인간의 악착같은 욕심을 보는 듯 했다. 나무와 그늘 없는 강변을 한참 달리면 북한강의 또 다른 섬 붕어섬과, 중도, 상도가 보인다. 마침내 춘천에 다 왔다는 생각에 페달을 천천히 밟게 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강 위에 점점이 떠있는 낚시배며, 작은 섬들 주변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조정경기 선수들의 훈련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특히 강물이 발 아래로 훤히 보이는 강가 위에 만들어 놓은 나무 다리길은 한결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무숲 어디선가에서 뻐꾸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성한 나무들이 양쪽에서 호위하고 있는 의암호 자전거 도로는 불필요하게 넓지 않아 좋았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는 명언에 맞는 자전거 길이다. 춘천하면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될 길이었다. ▲ 춘천 도심 한가운데 고가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풍물시장.
앞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공터가 나 있고, 장터 위로 고가도로의 그늘이 길게 이어져 있어 그런지 더운 날씨에도 많은 춘천 시민들이 시장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바로 건너편에 롯데마트가 거인처럼 서있고 가까이에 이마트가 있음에도 이런 장터가 북적이며 살아남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여러 과일의 즙을 내어 파는 노점에서 음료수를 사먹으려는데 짐가방 속에 지갑과 휴대폰이 없는 거다. 후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인 아저씨의 휴대폰을 빌려 사라진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절망적으로 이어지는 긴 신호 끝에 딸깍하고 어떤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지나왔던 옛 강촌역 인근의 어느 가게 직원이란다. 더위를 먹었는지 가게 앞 야외 테이블에서 간식을 사먹고 지갑과 휴대폰을 그대로 두고 나온 것이다. 이토록 강원도 사투리가 반갑게 들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양심적인 가게 여직원도 고맙고, 돈은 나중에 내라며 얼음이 동동 뜬 과일 음료수를 건네준 풍물시장 아저씨도 고맙기만 했던 충만한 춘천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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