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인)

춘설(春雪) 외 1편 (이해리 詩)

blueroad 2010. 5. 5. 07:33

 

 춘설(春雪)

                                             이해리

 

사랑!

 

때가 되었다고 오는 것은 아니네

 

손꼽아 기다린다고 오는 것도 아니네, 춘삼월

 

활짝 핀 살구꽃 속으로 뛰어드는

 

눈… 눈… 눈… 눈보라,

 

연분홍 꽃잎 속에 소복소복 쌓인 수정빛 백설을

 

그대 본 적 있는가?

 

무희舞姬들의 쉬폰 자락보다 얇은 꽃잎이

 

파르르 떨면서 보듬고 있는

 

머언 먼 설원雪源의 난간欄干을

 

사랑 말고 다른 이름 붙일 수 없네

 

눈 그친 사나흘 뒤에도

 

꽃잎 위에 아슬히 포개 누워

 

애잔하게 타고 있는 차갑고 하얀 불

 

꽃도 무너지면 두렵겠지, 눈도 불꺼지면 서럽겠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지 않은 일

 

두근거리며 후회하네.

 

 

 

 

 

 

향기가 내려온 길을 걸어 

 
                                          이해리
 
들판에 쑥닢 돋아나듯
 
내 안에 괴로움 쑥쑥 돋는 봄날
 
전지 중인 가로수 곁을 지나노라니 나무는 확,
 
향기를 풍겼다 흘깃 돌아보니
 
향기를 뿜어내는 곳은 잘린 부위였다.
 
나무는 왜 상처에서도 향기를 풍기는가
 
톱날이 다가오는 동안 무섭게 떨었을 공포와
 
썰려지는 순간의 아득한 절망은
 
어디다 갈무리 했을까,
 
꽃보다 초롱한 향기가 뭉클하다.
 
아픔을 아프다 말 못하는
 
괴로움을 괴롭다 말 못하는 향기
 
향기는 나무의 외로움인가
 

향기가 내려온 길을 걸어
 
그대에게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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