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설(春雪) 이해리
사랑!
때가 되었다고 오는 것은 아니네
손꼽아 기다린다고 오는 것도 아니네, 춘삼월
활짝 핀 살구꽃 속으로 뛰어드는
눈… 눈… 눈… 눈보라,
연분홍 꽃잎 속에 소복소복 쌓인 수정빛 백설을
그대 본 적 있는가?
무희舞姬들의 쉬폰 자락보다 얇은 꽃잎이
파르르 떨면서 보듬고 있는
머언 먼 설원雪源의 난간欄干을
사랑 말고 다른 이름 붙일 수 없네
눈 그친 사나흘 뒤에도
꽃잎 위에 아슬히 포개 누워
애잔하게 타고 있는 차갑고 하얀 불
꽃도 무너지면 두렵겠지, 눈도 불꺼지면 서럽겠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지 않은 일
두근거리며 후회하네.
향기가 내려온 길을 걸어
이해리
들판에 쑥닢 돋아나듯
내 안에 괴로움 쑥쑥 돋는 봄날
전지 중인 가로수 곁을 지나노라니 나무는 확,
향기를 풍겼다 흘깃 돌아보니
향기를 뿜어내는 곳은 잘린 부위였다.
나무는 왜 상처에서도 향기를 풍기는가
톱날이 다가오는 동안 무섭게 떨었을 공포와
썰려지는 순간의 아득한 절망은
어디다 갈무리 했을까,
꽃보다 초롱한 향기가 뭉클하다.
아픔을 아프다 말 못하는
괴로움을 괴롭다 말 못하는 향기
향기는 나무의 외로움인가
향기가 내려온 길을 걸어
그대에게 가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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