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10명 중 1명, C형간염이 원인 길리어드 신약, 고령자도 부작용 없어 美·日·유럽선 표준치료법으로 인정
어부 최모(63·전남 진도군)씨는 고된 뱃일로 어깨가 아플 때면 동료들과 함께 침을 가끔 맞았다. 돈을 아끼려고 한의원이 아닌 동네에서 침 잘 놓기로 소문난 무허가 시술사에게 침을 맞았다. 몇 일 씩 바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면도기를 돌려 쓰는 일도 흔했다. 그런데 3년 전 최씨가 간암 진단을 받았다. 정밀 검사에서 C형간염 바이러스가 나왔다. 비위생적인 침술과 위생용품 공동사용 등 C형간염의 위험에 오랜 기간 노출된 게 결국 간암으로 커진 것이다. 최씨는 2년 전 간을 60%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작년에 암이 척추로 퍼졌다.
◇간암 원인 10% 차지하는 C형간염
간암은 다른 암에 비해 원인이 명확하다. 바로 간염 바이러스다. 국내 간암 원인 중 70%는 B형간염이, 10% 정도는 C형간염이 원인이다. C형간염은 오염된 침술, 문신 시술, 성적 접촉 과정에서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전파된다. 국립암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C형간염 감염 위험은 성(性)관계 상대가 4명 이상 있으면 약 7배, 다른 사람과 면도기를 함께 쓰면 약 3.3배 높았다.
B형간염은 1980년대 예방 백신이 개발되고, 1995년 국가 필수접종에 포함된 탓에 감염률이 8%에서 최근에는 2% 정도로 떨어졌다. 장기적으로는 B형간염으로 인한 간암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하지만 C형간염은 다르다. C형간염은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워낙 심해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C형간염에 걸리면 일단 55~90%는 만성화된다. 몸에 남아 있다가 언제든 다시 활동한다는 의미다. 만성 C형간염을 20년 이상 앓으면 2~24%는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화가 되고, 간경화 중 1~4%는 간암으로 진행된다.
간암은 주로 40~50대에 많이 생기는데, 60세 이후 생기는 간암은 30% 정도가 C형간염이 원인이다. 미국 연구에 따르면 간암 진단을 받은 65세 이상 환자 7000명 중 C형간염이 원인인 경우가 약 23%, B형간염이 원인인 경우가 약 7%였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는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C형간염에 대한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C형간염 99% 완치 가능한 약 개발
그 동안의 C형간염의 표준 치료법은 페그인터페론이라는 면역력을 높이는 약과 리바비린이라는 항바이러스제를 함께 쓰는 것이었다. 48주 정도 쓰면 60~70%는 완치됐다. 하지만 이 치료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전체 환자의 45% 정도에 불과하다. 나이가 너무 많거나 임신을 앞둔 여성이라면 이 치료법을 쓸 수 없다. 이 치료법을 쓰는 환자의 75% 정도가 발열, 근육통, 두통, 피로, 가려움 등의 부작용을 겪는데 노인은 이를 이겨내기 힘들고 여성은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 때문에 10~20%는 치료를 중단한다.
1~2년 전부터 C형간염 완치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약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 약들은 돌연변이가 잘 생기는 바이러스의 특정 부위를 직접 공격해 바이러스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 치료 기간도 획기적으로 줄어 12주 혹은 24주만 약을 먹으면 된다. 면역력을 억제하는 게 아니어서 고령환자나 임신을 앞둔 여성도 쓸 수 있다. 페그인터페론과 리바비린을 함께 쓰는 치료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없다. 길리어드의 하보니란 약은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완치율이 99%가 나왔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의 학회에서는 이미 C형간염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도 진료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치료 기회 한 번 뿐… 재발 막아야
새 C형간염 치료제는 최근 개발됐기 때문에 간염이 재발했거나, 약에 내성이 생겼을 때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등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건강보험에서도 새로 나온 약으로 처음 C형간염을 치료한 사람에게는 약값을 지원하지만, 재발이나 내성이 생긴 경우에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 임영석 교수는 "C형간염 완치를 위해서는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C형간염의 유전자형, 질환의 진행 상태, 이전 치료경험이나 동반질환 유무 등 건강상태를 살펴 가장 적합한 약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