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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m 늘어선 절벽 병풍… 비단강을 가로지르다

blueroad 2011. 11. 24. 09:24

 

 

[서울신문]충북 옥천 땅에 나랏님의 부름을 받은 뫼가 있었답니다.

무엇 때문에 부름을 받았는지는 역사도, 사람도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나랏님의 굄을 받았다니 자태가 빼어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유추할 수는 있겠습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 또한 산을 넘지 못합니다.

도성으로 향하던 뫼는 현 군북면 추소리에서 비단강(금강·錦江) 물줄기에 발목이 잡혔고,

나랏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물게 됩니다.

그 산이 옥천의 숨겨진 명소 '부소담악'입니다.

 전설보다 아름다운 건 부소담악의 자태입니다.

'U'자 모양으로 휘돌아 가는 비단강 물줄기를 가르며 칼날처럼 곧추섰는데,

꼭 입이 긴 악어 가비알이 비단강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형상입니다.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 추소리
후세의 인심이 참 각박하다. 언필칭 '명소'를 찾아가는 길인데 번듯한 이정표 하나 없다.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에 가는 길을 물을 수밖에. 하지만 추소리에서 부소담악은 풍경의 주인이었다.

이정표가 없어도 찾을 수 있을 만큼, 또 먼 발치에서도 또렷이 인식될 만큼

독특하고 당당한 자태로 이방인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이름이 독특하다. '부소담악'(赴召潭岳)이다.

풀자면 '부소무니 마을 앞 물 위로 솟은 산'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가 '부소'(赴召)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임금의 부름을 좇아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을 이름치고는 어딘가 어색하다.

연꽃 부(芙), 못 소(沼) 자를 쓰는 게 제격일 듯하다.

실제 많은 이들이 이렇게 쓴다.

하지만 옥천군청 홈페이지 등에 언급돼 있는 이름은 분명 '赴召潭岳'이다.

이름의 연원은 불분명하다. 다만 향토사학자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백제 성왕과 관련된 표현이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성왕이 신라군에 의해 최후를 맞은 곳이 부소담악에서 약 2㎞쯤 떨어진 군서면 월전리고,

추소리와 뒤편 고리산에 백제군 진영이 있었다는 것은 기록이 전하는 사실(史實)이다.

이런 근거 위에 후대의 문장가들이 스토리텔링을 얹어 멋진 이름을 지은 건 아닐까.

 하긴 '연꽃 같은 호수'(芙沼) 등의 흔한 이름보다는 '군왕의 부름을 받은 산'(赴召)이란 이름에서

비장미가 물씬 느껴지지 않는가.

부소담악이 속해 있는 추소리는 작은 마을이다. 추동과 부소무니, 절골 등으로 이뤄져 있다.

 '환산'(環山)이라 불리는 고리산(579m)이 마을을 반지처럼 에워싸고,

마을 앞으로는 호수로 변한 금강이 유장하게 흘러간다.

예로부터 마을의 크기는 작아도 풍경만큼은 빼어났던 모양이다.

'추소 8경'이 따로 전해져 오니 말이다.

이제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원인은 1980년 들어선 대청댐이다.

 금강을 허리춤에 두르고 논과 밭을 거느렸던 고리산은 아랫도리가 물에 잠겼다.

그로 인해 주변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절골에 있던 안양사는 터만 남아 더 이상 저녁 종소리(제5경 안양한종)를 울리지 않는다.

초동들이 문필봉에 올라 불어대던 피리 소리(제6경 문필야적)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비단강을 가르는 칼
그런데 제8경이었던 부소담악만은 달랐다.

범상치 않은 풍모야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대청호가 조성되면서 그 자태가 더욱 도드라졌다.

 박찬훈 이장은 "예전엔 나무가 많아 병풍 같은 암벽이 잘 보이지 않았다."며

 "물에 잠기고 흙이 떨어져 나가면서 나무가 많이 사라져 암벽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추소 8경' 가운데 가장 끝자락을 차지했던 부소담악이 오늘날엔 되레 으뜸가는 볼거리가 된 셈이다.

오래전엔 산이었을 부소담악이지만 이제는 물 위에 뜬 바위 절벽처럼 보인다.

수십m 높이의 크고 작은 절벽들이 비단강을 찢으며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등을 머리에 인 절벽은 길이가 700m에 이른다.

의병장으로 유명한 조헌과 우암 송시열 등이 부소담악을 '숨은 병풍'(隱屛)이라 불렀던 이유다.

4번 국도 이백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구불구불 호반도로를 따라 5㎞쯤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온다.

이 나무가 부소담악으로 드는 사실상의 이정표다.

느티나무를 끼고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철조망 둘러친 바위가 눈에 띈다.

일제 강점기 때 텅스텐 광산이었던 곳이다. 박 이장에 따르면 광산은 길이 30m와 50m 짜리 두 개다.

그중 30m짜리는 장마철에도 침수가 되지 않아 6·25전쟁 때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여기서 발길을 재촉하면 곧 추소정이다. 2008년 조성된 2층짜리 정자다.

외관이야 내세울 게 없지만 2층에서 바라보는 풍광만큼은 더없이 빼어나다.

추소정부터 능선길이 급격히 좁아진다.

 끝자락까지 갈 수도 있으나 날카롭게 솟아오른 칼바위들과

그 아래 펼쳐진 벼랑이 제법 가슴을 움찔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작 부소담악의 완벽한 자태를 엿볼 수 있는 곳은 따로 있었다.

마을 뒷산이다. 향토사학자 류제구씨는 이 산의 이름을 "양지복호"라고 했다.

 '볕이 든 땅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란 뜻이다.

야트막한 야산의 이름치고 꽤 거창한 편. 이름에 걸맞게 된비알도 여간 심하지 않다.

 허벅지에 쥐가 날 정도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산을 오르지 않으면 풍경의 8할을 놓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 9부 능선쯤 오르면 부소담악과 대청호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왜 부소담악이 비단강을 가르는 칼인지 그제야 확연히 알게 된다.

●풍운아의 사랑 이야기 담긴 청풍정

대청호반 길에서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이 군북면 석호리의 청풍정이다.

 금강이 휘감아 도는 야트막한 야산 중턱 끄트머리에서 단아한 자태로 금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다.

 청풍정엔 전설 같은 사랑 이야기가 흐른다.

 주인공은 한말 개혁파 정치인 김옥균과 기녀 명월이다.

갑신정변(1884)이 3일 천하로 막을 내리면서 쫓기는 몸이 된 김옥균이 명월과 함께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복잡한 정치판에서 벗어나 빼어난 풍광 속에 머물게 된 김옥균은 대의를 접고 무기력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명월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김옥균이 큰 뜻을 펴지 못한다며 자책했고,

고심 끝에 장문의 편지를 남긴 채 금강에 몸을 던지고 만다.

정자 바로 옆 바위엔 '명월암'이란 글자가 또렷이 음각돼 있다.

세 칸짜리 정자야 보잘 게 없다. 하지만 정자가 타고 앉은 주변 풍경만큼은 더없이 빼어나다.

무엇보다 찾아가는 길이 장관이다.

금강과 마주한 산자락을 이리저리 둘러 돌아가는데 그 정취가 자못 도도하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대전통영간고속도로→판암나들목

→4번 국도 옥천 방향 우회전→군북파출소 앞 좌회전→군도 14호 추소리 방향→4.5㎞ 직진→추소리 순으로 간다.

청풍정은 추소리에서 나와 4번 국도 옥천 방향으로 좌회전, 석호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맛집:
금강을 끼고 있어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집이 많다.

도리뱅뱅이는 부산식당(732-3478)과 삼일식당(732-3467)이 많이 알려졌다.

모래무지 요리인 마주조림은 금강나루터식당(732-3642), 생선국수는 금강집(732-8083)이 유명하다.

잘 곳:
읍내에선 옥천관광호텔(731-2435)이 가장 크다.

춘추민속관(733-4007)은 옥천 구읍의 고택을 사들여 식당 겸 민박을 한다.

글 사진 옥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