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인)

동백, 그 년 외 3편

blueroad 2007. 7. 24. 11:23

동백, 그 년!

                     정소슬

 

사타구니 감추느라

제 발등 얼어터지는 줄도 모르던

동백, 그 년이

뻐덩뻐덩 언 치맛자락만 자꾸 훔쳐대던

그 촌년이

 

하필 펑펑 눈 쏟아 붓던 날에

허벅지 안 속살이 터져

솜이불 같은 눈밭에

피를 한 동이나 뿌려 놓았는데

거참 미련한 년이로구나! 얼빠진 년이야!

다가가 봤더니

 

후훗… 저, 이제 여자예요!

비로소 여자가 되었으니

한번만 입맞춰주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한번만 껴안아주고 가면 안 되겠냐고

불쑥 내민 입술이 얼마나 붉든지

또, 얼마나 달아 있든지

그 정도 단 입술이면

날 단번에 빨아 녹여버릴 거 같은

새빨간 陰門이

치마 밑에 수두룩 벌어 있었네.

 

 

 

어머니의 된장에 호박잎 쌈

                                       정소슬

어머니의

된장에 호박잎 쌈

그 생각에

 

허겁지겁 어머니 집에 들러

배고프다 졸랐더니

 

된장에 호박잎 쌈

그건 없고

어머니 드시라고 지난 날 사 넣고 간

굴비 구이에 쇠고기 국이다

 

또 어머니, 나 떠나고 난 뒤

숨겨둔

된장에 호박잎 꺼내

혼자만

허겁지겁 쌈해 드실 모양이다.

 

 

 

새벽강 / 정소슬 

 

새벽강이 산을 업었다

 

덜 깬 잠투정

는개로 꾹꾹 눌러 덮고

종- 종-

새벽길 간다

굽이굽이

자욱한 연무煙霧ㅅ길

휘돌아 간다

 

저 길 끝,

아득히 멀어져 가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 보다 늘 컸던

 

등짐.

 

 

 

달빛이 고운 날에는 

 

                                정소슬

 

아이야,

이렇게 달빛이 고운 날에는

노란 밤길을 걷자

풀 이슬에 옷깃이 젖은들 어떠랴

서릿발에 발목이 빠진들 어떠랴

 

길섶, 푸드득 나는 비둘기

그 소스라친 소리 하나도

후에는

정겨운 이웃였다는 걸

추억하게 될 걸

 

강가, 폴짝 뛰어든 달이

흐늑흐늑 머리를 풀고

짓궂게 떠 내리는 모습도

후에는

마냥 그립기만 할거야

 

아이야,

이렇게 달빛이 고운 날에는

빈 가슴으로 뛰쳐나가

풍경을 노랗게 묻혀와

그걸 덮고 잠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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